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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Nov 17. 2021

분노의 타이밍

너의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은

감정이라는 옷장에는 여러 벌의 옷이 있다. 어떤 옷은 내게 유독 잘 맞고, 어떤 옷은 내게 유독 안 맞는다. 옷에 내 취향이 반영되는 것처럼, 감정에도 내 취향이 반영된다. 어떤 감정은 무척이나 내 취향이라 닳고 닳도록 지니고 다니지만, 어떤 감정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옷장 깊숙한 한 켠에 고이 모셔다 둔다. 내 취향이 아닌 감정들 중에서도 유독 심하게 안 맞는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노’다.


안 맞는 감정이라 해서 사용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요즘 너무 자주 사용하면서 안 맞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봐도, 화내는 과정은 필요하다. 내 영역을 침범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무방비하게 있는 것은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다는 뜻 이리라. 하지만 ‘분노’가 나에게 맞지 않는 이유는, 화를 내고 나서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종종 화내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화를 냈고, 화내야 할 상황에서 화를 내지 못했다. 내가 ‘분노’라는 감정에 후회를 달고 사는 이유였다.


가끔씩 화를 내서 상황을 진전시키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사람들은 화가 나는 특정 상황을 맞닥뜨리면 본능적으로 적절한 분노를 표출한다. 그렇게 상황을 반전시킨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한다. 난 화가 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일단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내 마음속에 침범해 자리 잡은 이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서.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 게 옳은 건지에 대해서. 정말로 내가 저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일까, 이 감정이 분노가 아니라 어쩌면 자격지심이 아닐까. 저 사람의 행동에 과연 악의가 깃들어 있을까.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닐까.


그렇게 타인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화를 누르다가 정작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화내지 못하곤 했다. 정확히 말해서, 화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우리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서겠지. 그런데 또 너무 솔직해도 탈이다. 성급하게 내면의 모든 걸 공개한다는 것은, 약점을 공개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나도 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해결책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상황에서 화를 내야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만화를 볼 때, ‘화’는 종종 펑 터지는 형태로 묘사된다. ‘화’는 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니는 형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 이 ‘화’를 폭탄이라 상상해 보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감정의 폭탄인 것이다. 폭탄은 어느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어느 상황에서 잘못 쓰일까. 터널이나 갱도 진지, 채굴 현장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는 폭탄을 쓴다. 막힌 벽을 뚫기 위해 우리는 폭탄을 써서 통로를 개척한다. 그건 우리에게 유용한 일이다.


반면에 원자폭탄, 원전 폭발 등을 상상해보자. 폭탄이 사람을 향하면 절망이 된다. 폭발로 인해 신체가 갈기갈기 찢기고, 방사능 여파로 인해 오랜 후유증에 시달린다. 마치 누가 나를 향해 화를 내면 가슴이 찢긴 것마냥 아픈 것처럼. 며칠이 지나도 그 분노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 것처럼.


‘화’를 사람한테 향하게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에 죽음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풀이 죽어 시들어가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분노가 어쩌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화’가 상황을 향하도록 만들 것이다. 어떠한 상황 때문에 너가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내면의 무엇이 널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상황은 항상 우리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측면의 고통이 널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확인할 것이다. 그렇게 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난 분노로 충전된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다. 널 힘들게 만든 그 ‘상황’을 향해.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널 이해할 수 없다면, 난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이는 이빨이 아니라 치아라 불린다. 네가 날 위협한다면, 그때 난 치아를 잠시 숨기고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바랄 것이다. 내가 본능적으로 이빨을 드러낼 수 있기를. 네가 이빨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기를. 우리가 적절한 타이밍에 분노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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