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밀

모순- 양귀자

by 이브와 아담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의 말

정답을 맞히면 칭찬받는 교육 환경에서 살아온 내게 모순은 회피의 대상이었다. 울타리 밖 자연이 우리의 사고로 정의 내리기 힘든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나는 울타리 안 세계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답만 찾으며 살고 있었다. 그땐 몰랐다. 모순 없는 삶이 튜토리얼 삶이었을 줄은. 크면 클수록 더 바보가 되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사실이었을 줄은.


소설의 주인공 안진진은 두 명의 남자를 사이에 두고 하트 시그널 게임을 한다. 그러니까, 마음에 가는 두 명의 남자 중 누구와 결혼을 할지 고민한다. 한 남자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계산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나영규. 안진진은 이 남자 옆에 있으면 편하다. 왜냐하면 함께 걸어가는 행로를 이 남자가 전부 설계해주기 때문이다. 나영규의 계획된 미소, 계획된 속삭임, 안진진은 그저 나영규 손을 잡고 따라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우연의 여지가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에. 또한 자신이 나영규 인생 계획서의 한 부품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영규가 뻔했다면, 여기 뻔하지 않은 다른 남자가 한 명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름다운 꽃을 보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 무계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매력이 있는 사람 김장우. 계획이 빠진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것은 낭만이었고 안진진은 그의 마음 모양을 보며 어쩌면 자신이 이 남자를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영규에게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그에게선 느낀 것이다. 그래서 안진진은 자신의 응달을 나영규에게 보여줄 수 있었지만, 김장우에게는 보여줄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버지의 DNA가 있었다. 소설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아마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일에 몰두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않아서 생긴 불만을 가정 폭력으로 발현시켰을 것 같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더더욱 고통에 몸 던져야 했던 모순을 견딜 수 없어 집 밖으로 나가버린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이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살아내는데, 스스로의 모순을 해석할 수 없던 아버지는 이해받지 못할 모순 그 자체가 되어 절망의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있어서 절망에 찌든 자기모순의 원형이었다. 자신의 목에 묶인 망토를 직접 풀려고 하지도 않고 계속 술만 마시며 잊으려는, 절망에 손 대기도 싫었을 정도로 무척이나 순수하고 멍청하도록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낭만이 안진진의 DNA에 유전되었다. 김장우에게 같은 바닷길을 반복해서 운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 낭만을 들키기 싫어하면서도 누군가가 그 낭만을 알아줬으면 하는 모순을 가진 안진진.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행히 쌍둥이 엄마가 있었다. 각각 부유와 가난에서 살아가는 쌍둥이 엄마들. 그래서 안진진은 아버지와는 달리 삶의 모순을 어려서부터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이 개인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녀는 가난했던 엄마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내면에서 생존 본능을 이끌어내 고난의 벽들을 하나하나 격파하고야 마는 어머니의 강인함을 안진진은 본 것이다. 그 고난에 몸 던지는 것이 비로소 삶의 열망 그 자체였음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이모의 죽음을 통해.


꼭 나영규 같은 남자를 만나서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던 이모. 꼭 김장우 같은 남자를 만나서 고되고 가난한 삶을 살았던 안진진의 어머니. 삶의 모순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안진진의 어머니는 그래도 살아내었다. 어떻게든 배우고, 어떻게든 힘들게 노동을 해서. 하지만 이모의 경우 그러한 삶의 모순들을 이모부가 다 막아주었다. 이모는 삶을 살아내었다기보단, 차라리 새장 안에서 바깥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마리의 새였다. 그 지독한 답답함과 지루함을 견딜 수 없던 그녀는 죽음을 통해 잊지 못할 모순적인 사건 하나를 만든다. 그녀의 자식들인 주리, 주혁이만큼은 절대 새장 속 삶을 살아내지 말라는 교훈을 주면서. 세상에 ‘그건 옳지 못한 거야’ 따위는 없다고.


소설을 읽으며 난 당연히 안진진이 김장우를 선택할 줄 알았다. 안진진은 모순의 의미를 이해했고, 고난을 견딜 배짱을 가지고 있었으며, 김장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나영규와 결혼식을 올린 것을 보며 일종의 유치한 배신감까지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진진의 친절한 변명을 듣고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삶은 불행했지만 이모는 그런 삶을 동경했다. 모순과 정면 대결하는 삶을.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반면에 모두가 이모의 삶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이모는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불행히 여겼다. 삶이라는 영화에서 그녀는 오롯이 관객이었기에. 주인공이 되지 못했기에. 그러니까, 빛과 어둠 속에는 각각 숨겨진 어둠과 빛이 있던 것이다. 빛에는 눈부심이, 어둠에는 아늑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의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안진진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겨울이 좋은지, 여름이 좋은지 종종 물어보고 다닌다는 내용의 글을. 여름이 되면 얼른 겨울이 오길 바라고, 겨울이 되면 얼른 여름이 오길 바라는 이 모순 속에서 난 겨울을 선택했다. 안진진의 말마따나 스스로에게 없던 것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면, 그리고 만일 내 결정이 현명했다면, 나에게 없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몸에 열이 좀 있는 편이긴 한데, 그것 때문에 겨울을 선택한 것 같진 않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겐 관계가 없었다. 그러니까, 관계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조금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어쩌다 누군가에게 연락하면 ‘세상에나’ 추임새를 꽤 자주 들었을 정도로. 나에게 있어 관계는 여름의 불쾌지수와 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도 강해서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가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줄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이런 내 관념이 보기 좋게 깨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세상은 겨울로 변한다. 내 안의 열은 밖으로 새어나가고 그 자리를 추위가 비집고 들어온다. 나는 그때 관계를 갈망하게 된다. 일 년에 한 번만 연락해도 왜 이렇게 연락이 없냐며 질책하지 않는 사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 날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 무심한 듯 그저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재단하지 않는 사람,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사람, 그만큼 스스로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내 안의 열기가 무색해질 만큼 따스한 존경심이 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난 관계를 갈망하게 된다.


나도 안다. 이런 성격 살아가기 힘든 거. 정말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연락해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고 한다. 난 당신의 연락이 필요가 없는데. 후 너무 솔직한가. 밖에선 이러지 않는다. 여기에서라도 솔직해지고 싶다. 어쩌면 이해받고 싶은 걸지도. 밖에선 가면을 쓰고 다니니 이해받을 필요도 없다. 조금 덜 예민해하고, 조금 덜 사랑하기만 하면 모든 게 편해진다. 나는 쉽게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 실없는 농담에 맞장구 쳐주고 별 미안하지도 않은 일에 미안해줄 수 있다. 얼굴과 마음의 부조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이다. 평생 풀어야 할 숙제, 혹은 평생 숨겨야 할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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