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이 아닌 디딤돌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이브와 아담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892636

그렇다. 우리 얘기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예기치 못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 하나의 목표를 위해 우리는 매일 24시간 365일 연중무휴로 경계작전과 상황조치 훈련, 철책 점검 및 관리를 실시한다. 사실 나는 2달 간격 로테이션으로 이곳 전방으로 파견을 오기 때문에 365일 연중무휴로 일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작전은 언제나 공백 없이 진행된다. 그리고 제대로 진행된다. 이토록 상황 발생이 빈번한 지역인 만큼 믿음직한 지휘관님이 배정되시기에.


지형 상 이곳은 탈북민(귀순자) 혹은 월북민이 DMZ 구간을 넘기 가장 유리한 지역이다. 강원도 동측 끝자락이라 군사분계선의 끝이 위치해있고, 우측은 바로 동해바다라 지대 감시와 해안감시를 병행해야 하며, 전군 중 감시책임구역이 가장 광범위하다. 책임구역이 광범위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사고 발생 가능성의 증가는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가 짊어진 변수와 책임의 면적이 넓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한반도 지형 특성상 동측에 봉우리가 많이 위치해 있어서 귀순자들이 철책을 넘는 것과 카메라 감시를 피해 신변을 은폐하는 것이 꽤나 유리하다.


그래서 22사단은 별들의 무덤이라 불린다. 성공적으로 상황을 조치하지 못해 책임을 지고 지휘관 자리를 사임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통상 사임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세 분의 지휘관님이 임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셨다.


2021년 초에는 우리 감시책임구역인 동해바다로 북한 미상 인원이 그것도 한겨울 야밤에 헤엄을 쳐서 탈북을 감행했다. 감시하기 취약한 구역인 배수로 밑을 따라서. 공격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가 있다. 보통 선제적으로 행동을 취하는 쪽은 공격하는 자다. 공격이 있어야 방어가 있는 법이니까. 우리는 방어하는 자다. 실제 상황에서는 공격하는 자의 행동에 따라 방어 행동을 맞춰야 하고 예상되는 모든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평시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서 상황조치 훈련을 실시한다.


하지만 DMZ를 넘으려는 자들은 보통 마음을 먹은 자들이 아니다. 2021년 헤엄 귀순자(일명 오리발 귀순자)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야밤의 바다를 헤엄쳤다. 외추도에서 화도까지 3km에 이르는 추운 한겨울 동해바다를. 그는 아측 감시취약지역을 미리 파악했고, 바닷물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시기까지 예측하고 움직였다. 일각에서는 그가 간첩, 특전사 출신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자세한 건 나도, 언론도 모른다. 퍼져있는 이야기들은 보안을 지키기 위한 연막 혹은 파편일 뿐 정확한 진실은 수뇌부만 알고 있다.


그리고 2022년 1월 1일. 군단장님께서 올해는 22사단의 해라고 말씀하시며 완전작전을 격려해 주신 그날 밤, 눈빛과 한 마디 인사만으로 신년을 조촐하게 자축하고 평소처럼 경계작전을 지속하던 그날 밤, 여단장님께서 실패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라 말씀하시며 따스한 신년사를 적어내리셨던 그날 밤, 감시체계가 뚫렸다. 그것도 탈북이 아닌 월북으로. 22사단의 해 첫날부터 신고식을 제대로 치른 것이다.


따질 것 없이 분명 우리가 잘못했다. CCTV 감시병의 미보고, 이로 인한 부실한 초동조치, 철책 절곡 경보에 대한 신속하지 못한 출동. 허점이 너무도 드러난 감시체계였다. 언론에 창피한 꼴을 당하고 사기가 저하된 것 모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바로 기가 죽은 지휘관님을 보는 것이었다. 부족한 부하들 덕분에 홀로 비난의 화살을 맞으시게 된 대대장님.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대대장님의 뒷모습은 눈에 띄게 야위어지셨다. 이번 사건이 대대장님의 진급에 분명 영향을 미칠 터, 대대장님은 아직도 홀로 후속조치를 진행중이시다.


뉴스에 적힌 댓글들을 본다. 마땅한 징계를 줘라, 군기가 빠졌다, 경계작전 실패는 용서할 수가 없다, 대대장 보직 해임해라. 그렇다. 오늘도 뼈저리게 느낀다. 세상은 결과만 본다는 것을. 패배의 결과는 과정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반면 월북자를 잡기만 했더라면, 감시체계에 오류가 있더라도 세상은 이를 크게 탓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나태할 자격이 없었다. 당장 1년 전의 오리발 귀순 사건 때문에.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열영상 카메라 감시병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철책이 끊어지거나 휘어지면 상황실에 경보가 울린다. 그런데 이 경보 시스템, 1년에 5만 회 오작동을 일으킨다. 고라니가 철책에 충격을 줘서, 너구리가 철책을 갉아먹어서, 때로는 카메라에 잡히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조차 센서에 잡혀서 경보가 울린다. 경보가 울리면 감지된 원점을 향해 순찰조가 투입된다. 우리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5만 번 믿어야 하는 것이다. 경보가 그렇게 빈번히 울리면 센서 민감도를 낮추면 되지 않나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센서 민감도를 낮추겠다는 건 날이 밝고 주변이 시끄러우니 눈과 귀를 가리겠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이는 위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렇다. 결국 핑계라면 핑계다. 5만 번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는 기계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계속되는 오경보 앞에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기 어렵다. 이건 사람이 사용하는 장비이지만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장비는 아닌, 어쩌면 군대와 조금 닮아있는 감시 시스템인 것이다. 그래서 당시 근무자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은 결코 그러지 못하겠지만.


사건이 터지고 며칠 후, 사령관님께서 부대를 방문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감시 시스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인정한다. 감시 시스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5만 번의 양치기 소년 거짓말을 감내하길 버거워하는 우리들의 문제였을 뿐이다. 고개를 돌려 대대장님을 본다. 또박또박,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브리핑하시는 대대장님. 우리가 말을 안 들은 건데, 우리가 지침대로 하지 못한 건데 대대장님은 그 자리에서 한번도 우리를 질책하지 않으셨다. 결국 이번에도 우리 쪽으로 병력이 투입되거나 감시 장비들이 개선되거나 하는 일들은 생기지 않았다. 비용적인 이유에서든, 여건이 어려워서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대대장님은 서서히 활기를 되찾으셨다. 부대도 실패의 늪에서 벗어나 밍기적 밍기적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건 무슨 마법 같은 일이 아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불씨를 지피시려는 대대장님의 몸부림을 본다. 마음의 점화를 위해 어떻게든 차가운 부싯돌을 맞부딪히시는 그 의지를, 눈빛을, 태도를 본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그 편한 말 속에는, 내면의 재건을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저절로 해결되는 건 없다. 다시 한 번 실패와 마주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실패를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 삼자고 선택하는 것. 작년에도 실패하고, 올해에도 실패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언제 또 누가 DMZ를 넘을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까. 현실은 우리의 마음을 배려해주지 않으니까.




내 마음의 부싯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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