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모험

가장 가깝고, 또 가장 먼

by 이브와 아담

모험이란 무엇일까. 낯선 장소에 던져지는 것, 나는 모험을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외지에서의 경험으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 예측할 수 없는 무질서의 에너지가 우리에게 주는 기운.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모험은 배움의 과정이다. 내게 가르침을 주던, 상처를 주던 어떤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때로 모험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故 OOO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황망한 마음에 일일이 연락드리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뭐야, 야 잠깐 끊어봐. 친구와 통화를 멈추고 벌떡 일어나 문자를 다시 찬찬히 훑어본다. 틀림없는 친할아버지의 성함.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 문자 받았어? 방금 문자를 봤다는 아빠의 대답. 지금 바로 용인으로 내려간다고 말씀하신다. 잠깐, 그럼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거야? 어떻게 돌아가셨고, 누가 발견했는데? 수많은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아빠는 전화를 끊으셨다. 청원휴가라도 내서 얼른 나오라는 말씀만 남기시며. 걱정이 앞선다. 원래 지금처럼 전방에 파견 온 동안은 휴가를 나갈 수 없었다. 이곳은 24시간 현행작전을 하는 곳이라 근무에 공백을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근무를 선뜻 서주겠다는 동기들이 있었고, 늦은 시간에 지휘관님께 직접 상황을 보고해 휴가를 승인해준 선배님이 계셨다.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난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추모해보는 이 모험을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 깊이 감사하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새벽 버스 안에서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언제 오냐고. 지금 친가 친척들이랑 같이 있는데 어색해 죽겠다고. 친척. 사실 이 단어를 마주치면 항상 외가 친척들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친척이라는 단어 속에 친가 친척들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친가 분들은 내게 조금은 어색한 분들이셨다. 어릴 적 이후로 뵌 적이 없었기에. 엄마는 예전부터 관계가 거의 단절된 아빠의 본가를 버거워하셨다. 과묵하신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단절의 이유를 밝히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게 외가 친척들은 일종의 빛이자 행복이었고, 친가 친척들은 어둠이자 슬픔이었다. 난 지금 어둠을 향해 모험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매형이 서 계셨다. 어떤 아저씨와 함께. 먼저 날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는 매형. 나도 인사로 화답한다. 구두를 벗고 들어서려는 찰나,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마스크를 쓰셨지만 눈매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살이 너무 빠지셔서 몰라뵀어요.”

“인사도 없이 들어가냐, 무슨 내 입관식인 줄 알겠다.”

살짝은 퉁명스럽게 대답하시는 삼촌. 그래, 삼촌은 이런 분이셨다. 고등학교 시절, 동생에게 디자인 관련 조언을 해 주시는 삼촌 특유의 지적질하는 듯한 말투와 태도를 경험하고 학을 뗐던 동생. 동생은 그날 이후로 삼촌과 거리를 두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도 조그마한 덩치의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친가 친척들 중 우리 남매와 유일하게 같이 재밌게 놀곤 했던 막내 고모였다. 저 작은 막내 고모의 무릎 높이만 할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 이후로 한 번도 막내 고모를 뵌 적이 없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저 작은 덩치로 항상 앙칼진 에너지를 뿜어내시곤 했던 고모는 지금 눈가에 힘이 풀린 채 방구석에 녹아 계셨다. 고모,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는 너무도 작아진 고모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린다. 현대미술을 전공하신 그 스타일답게 오랜 외계인 친구를 보듯 날 반기시는 고모. 아주 어릴 적 내 바지를 갑작스레 훌렁 내리고 “아이스께끼~” 라 외치며 장난을 치시던 막내 고모는 더 이상 여기 없었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본 첫째 고모. 젊은 시절 새색시였던 우리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해서,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진으로만 뵙곤 했던 고모부. 고모부의 아들이자 유일한 내 한 살 위 친사촌은 명문대 학생이다. 엘리트주의 경향이 있으시던 할아버지는 나보다 친사촌을 더 예뻐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어 개의친 않았지만. 안 그래도 어른들의 사정으로 멀어진 친사촌과의 관계를 안타까워했던 누나는 고등학교 시절 그 적은 용돈으로 우리들을 따로 불러 비싼 뷔페 음식을 사주며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마련해주곤 했다.


여기저기 찾아가 인사드리는 날 발견한 누나는 한 손에 내 상복을 든 채, 입관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른 준비해야 한다며 탈의실로 날 밀어 넣었다. "너 이렇게 멀리서 온 거 할아버지가 아셨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시뻘게진 눈으로 또 울먹이는 누나. 반면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분명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했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무색할 정도로 눈가에 물조차 차오르지 않았다. 쌍둥이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엄마는 누나를 친가에 맡기고 육아와 피아노를 병행하셨다. 그래서 누나는 분명 내게 없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누나가 흘리던 눈물은 바로 그 추억의 유실이었을 것이다.


입관식을 시작하겠다는 알림방송이 떴다. 다른 사람 장례식장에 가보기나 했지 직접 이렇게 장례 절차를 밟아보는 건 처음이라 입관식이 뭔지 몰랐는데, 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시신을 직접 보는 절차라고 한다. 첫째 고모와 막내 고모는 차마 보지 못하겠다며 참여하지 않았고, 남은 우리들만 할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했다. 입고 계신 고운 모시옷처럼 곱게 주무시는 듯한 그 표정. 삼촌은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울고 계셨고, 아빠는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의 열기에 부옇게 번진 안경을 닦을 생각도 안 하시고.


장례식은 철저히 절차에 맞춰 진행되었다. 그동안 제사, 기도 같은 의식행위에 대해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오늘 깨달았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의지할 만한 게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의식절차라도 만드는 것이라고. 이렇게라도 해야 할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성취한 듯한 느낌을 받고, 편해질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이러한 의식행위를 계속해 온 것이라고.


입관식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가족들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 짐 챙겨가라고 연락이 온 거야. 난 또 짐이 엄청 많은 줄 알았지. 근데 병원 가보니까 휠체어에 허리 받침대 하나만 달랑 올려져 있더라. 그게 할아버지의 마지막 짐 전부더라.

누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눈물을 흘려내는 누나. 친가와 오랫동안 교류를 하지 않은 엄마의 표정도 어두워 보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첫째 고모에게 인사드리며 자꾸 말을 걸자 내 옆구리를 쿡 찌르시던 엄마. 그렇게 긍정적이고 밝은 우리 엄만데, 아직도 용서를 못 하셨나 보다.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어색한 관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가족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우리들. 문득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벽들을 전부 허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인 갈등으로 관계를 끊다시피 했던 아빠와 삼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상종하지 않았던 엄마와 첫째 고모. 뿐만 아니라 친가 어른들은 동맹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적, 각자도생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 편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모님과 같은 시선으로 삼촌과 첫째 고모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처음 만난 우리들은, 그렇게 어두운 밤에 대화의 첫 물꼬를 텄다. 물론 벽을 허물고 싶어 하는 내가 먼저 시작했다. 이제 전역 얼마 안 남았는데, 뭐 할 거냐고 어색하게 묻는 삼촌. 아직 예열 중인 꿈의 뚜껑을 여는 게 부담스러워 입을 닫고 있던 내게 삼촌이 말한다.

뭘 뜸 들여, 다 알고 있어 인마. 누나한테 다 들었어. 너 OOO 하고 싶다며. 야, 너 상도 탔다며. 그거 해.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마. 그 사람이 네 인생 대신 살아준대? 대신 돈 벌어다 준대? 네가 네 인생을 책임져야 할 때가 올 때, 그때 네 인생이 시작되는 거야. 네 마음이 시키는 걸 해. 주위 살피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얼마나 멋진 말이냐. 절대 굴하지 마.

눈치껏 알 수 있었다. 삼촌이 말한 '그 사람', 바로 우리 아빠라는 것을. 물론 난 지금도 아빠를 사랑한다. 내 앞길을 대신 정해주려는 그 태도도 아빠의 삶의 궤적을 알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이런 말을 해줄 어른이 필요했다. 입관식 때도 울지 않던 내가 어느새 삼촌 앞에서 울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내게 악마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던 삼촌은 그 시간만큼은 멋진 스승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의 모습으로.


잠이 오지 않아 동생과 못다 한 얘기를 한다. 동생이 이번에 장만한 자취방, 앞으로의 행로, 요즘 군대는 어떤지, 연애는 잘 하는지 등등. 동생이기도, 때로는 형이기도, 때로는 친구이기도 한 이 요상한 녀석이랑 함께 있으면 항상 든든했다.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친가 친척들과는 그러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만 조급함을 느낀 건 아니었나본지 막내 고모가 같이 아침을 먹자고 하셨다. 18년 만이었다. 이렇게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아무래도 나보다 옛날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 누나가 고모와의 어릴 적 추억 보따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릴 때 고모 서랍을 만지다가 등짝을 맞았던 기억, 매운 거 잘 드시지도 못하면서 매운 음식만 찾으시던 고모의 모습에 대한 기억. 추억에 잠긴 고모는 갑자기 웃긴 일화가 생각나셨는지 풋풋했던 18년 전 웃음을 그대로 지으시며 누나의 보따리에 화답했다.

엄마(친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아꼈는지 몰라. 아마 너(누나)가 초등학생 때였을 거야. 소풍날에 너 친구들은 엄마랑 손잡고 가는데 너만 할머니 손잡고 갔거든. 새언니가 쌍둥이들 돌본다고 너를 우리한테 맡겼어. 그때 다른 애들은 전부 김밥 한 줄, 도시락 하나 이 정도만 가지고 갔는데 너는 할머니가 양손에 피자랑 치킨을, 애 혼자 다 못 먹을 양을 두 손 가득 들고 가신 거야. 애들은 먹고 싶다고 주위에 모여들지, 할머니는 먹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시지, 너는 그 상황이 불편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지. 그때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완전 뭐 혼자 여왕이야 여왕. 엄마가, 그니깐 네 할머니가 너를 그렇게 아꼈어. 너는 유일한 손녀잖아.

아주 미세하게,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웃어 보이며, 우리는 그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발인 절차를 밟으러 나갔다. 대열 맨 앞에서 누나가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었고, 그 뒤를 남자들이 관을 들고 뒤따랐다.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승화원에 도착한 후 화장터를 볼 수 있는 대기실로 모두가 들어갔다. 화장터 안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관. 너무도 잿빛인 그을리고 어두운 화구 안으로 할아버지의 관이 무방비 상태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모두가 곡소리를 내었다. 이제 정말 죽음의 문을 통과하시는구나. 아빠가 소리내어 우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화장은 2시간동안 진행되었고, 우리는 그동안 좁은 대기실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모두가 모였다. 첫째 고모네 가족, 우리 가족, 삼촌, 막내고모. 한참을 울다가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고 있던 와중, 내가 정적을 깼다. 예전에 누나와 동생과 사촌형이랑 함께 애슐리에서 밥 먹었던 추억을 끄집어내며. 분명 내가 그때도 형한테 말 놓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말을 놓지 못한 형. 내가 동생이니 말 놓아도 된다며 다시 얘기했다.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형. 어, 전에는 인류학 공부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갑자기 생각나 묻자 고모부가 고개를 들더니 날 빤히 바라보셨다.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표정으로. 형도 그걸 지금까지 기억한 내가 신기했나본지 반가워하며 전공을 바꾼 경위를 설명해줬다. 지금은 소아과 쪽을 분야로 삼고 있다고 하자 유아교육을 전공한 누나가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고모부는 내가 군대에서 어떤 보직으로 임무수행하고 있는지 물어보셨고, 울릉도를 여행한 적이 있던 매형과 막내 고모는 그곳이 어떻게 좋았는지, 각자의 여행은 어땠는지 정보를 공유하셨다. 첫째 고모는 여전히 고모부와 사촌 형에게만 말을 붙이셨고, 삼촌은 대기 시간 내내 밖에 계셨다. 아빠는 시끌시끌한 이 상황이 어색하셨나본지 가만히 앉아 계셨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 옆에 앉아 마스크 뒤에 숨어 눈을 감고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내셨던 것 같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친가의 모습이라서. 그리고 어쩌면, 이제서야 당신 자식들과 사촌이 이렇게 친해질 기회가 마련된 것이 미안해서.


언젠가 할아버지는 생전에 내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절대 서로 싸우지 말라고. 누나랑 나, 동생과 사촌형. 서로 챙겨주고 배려하라고.


모험이란 무엇일까. 낯선 장소에 던져지는 것, 나는 모험을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때로 모험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친가 가족들은 이틀동안 모험을 했다. 서로를 향한 모험을.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여정의 길목에서 선물 하나를 숨겨두셨다. 우리가 서로 대화할 시공간적 기회를. 그간 각자가 그늘에 잠겨 서로를 등지고 있었다면, 그 그늘을 벗겨줄 이도 서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가족은 그런 존재라는 것을, 그런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우리 모두가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할아버지의 선물은 적어도 그 순간의 우리에게 너무도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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