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부터의 자유
초등학생 때 필기구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소비욕이 크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필기구에서만큼은 유독 관심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가죽 필통, 하드보드지 재질 필통, 철제 필통, 키플링 필통 등 각양각색의 필통들이 서랍을 채우곤 했다. (심지어 보드게임이 탑재된 필통도 있었다!) 그리고 제도 샤프, 스테이들러 샤프, 파커 샤프, 펜텔 샤프, 손잡이 부분에 무슨 이상하고 말캉말캉한 젤리가 덮인 샤프, 만년필 등 수많은 필기구들이 필통에 꽉꽉 욱여져 있었다.
사실 초등학교 우리 학년만 그랬을진 모르겠지만, 필기구 모으는 게 유행이었다. 서로 상대방 필기구가 마음에 들면 간이 당근마켓 혹은 교환마켓을 열어 일대일 대면 직거래도 마다하지 않았다. 간혹 거래를 통해 내가 갖고 싶던 필통을 획득하는 날에는 그 어느 때보다 들뜬 마음으로 집에 와 필통 지퍼를 이리저리 열었다 닫으며 그 부드러운 느낌을 만끽하곤 했다. 징그럽지만 뽀뽀도 서슴지 않았다. 이 성향을 그대로 지닌 채 컸다면 난 분명 명품병에 걸렸을 것이다.
장비가 생기면 사용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고 했던가. 어쩌면 그래서 글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필기구를 자주 사용하고 싶었기에 글이나 일기를 쓰는 숙제에 거부감이 없었다. 흰 종이를 보면 두더지게임 마냥 반기며 검게 물들였다. 글을 적거나 낙서를 하거나 해서. 그렇게 난 자연스럽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고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필기했다. 본래 필기라는 것은 핵심만 간단히 보기 쉽게 요약해야 효과가 있는 법인데, 필기구 허영심이 강했던 나는 교과서나 공책에 빼곡히 글씨들을 채워 넣었다. 머릿속에 넣어야 할 지식을 흰 종이에다가 넣은 것이다. 바보같이. 그러니 성적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고, 난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내 공부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지 못했다.
과한 필기가 내 공부법의 문제였다는 것을 인지한 것은 군대에 오고 나서부터였다. 선배들이 알려주는 업무사항들을 편안히 듣는 부류가 있고 뭐 하나 빠질세라 수첩에 바삐 적으며 듣는 부류가 있는데 난 후자였다. 이후 필기를 안 한 부류보다 업무 적응도가 느린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서 내 공부법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대충대충 사는 사람들이 자기 객관화도 잘하고 똑똑하더라. 오히려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착각에 빠져 스스로의 문제를 보지 못하기 일쑤였다.
좀 급진적이고 과한 해석일지도 모르나,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난 한 번도 직접 부딪히는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다고. 필기하는 습관 하나 가지고 이런 생각까지 한 게 지금 보면 웃기지만, 그래도 그 급진적인 생각이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필기는 내게 일종의 도피였다. 지금 당장 머릿속에 넣기 부담스러우니 일단은 기계처럼 모든 말들을 받아 적은 후 나중에 소화하겠다는, 그런 게으름이었다. 세상이 내게 건네는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더 이상 갈팡질팡하기 싫어서, 부딪히기 싫어서 한 걸음 뒤로 유보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자기 위로였다. 그리고 그건 두려움을 부풀리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필기하는 빈도를 의식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유입되는 정보들을 그 자리에서 소화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기록하지 않아 일부가 유실되더라도. 되도록이면 흰 종이가 아니라 머릿속에 정보를 새기고자 했다. 한 번에 좋아지진 않았다. 필기하는 습관으로 인해 약해진 내 집중력은 사소한 걸 종종 빠트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상급자들에게 깨지곤 했다. 하지만 반복은 사람을 바꾼다. 난 더 이상 한 걸음 뒤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두 발 딛고 서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내 경험을 자신 있게 동료나 후임들에게 인계할 수 있었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해당 정보가 없는 것에 대해 상대방의 배려 없는 정보 전달 방식을 탓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스스로의 잘못도 더 잘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걸음 뒤에 서면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기 힘들다. 남들이 내 뒤통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 모든 건 내가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수업 열심히 들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거 하나도 빼먹지 말고 다 받아 적고.
엄마 탓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선택에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이 글을 쓰면서, 의도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의 미묘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입 열기 전 수없이 많은 고민들을 거치는 것이 결코 아깝지 않은 노력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상대방의 말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과, 그만큼 누군가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너무 힘들어 할 필요 없겠다는 사실도.
이제 내게는 필기구가 없다. 쓰지도 않는 필통 속에는 샤프와 볼펜 네 자루, 지우개 뿐이고 이조차도 챙기기 귀찮아서 그냥 검은색 볼펜 한 자루만 들고 다닌다. 실밥 터질 것 같던 필통도 지금은 텅텅 비어있다. 이젠 그 공간을 여유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