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런 말이 있다. 실패는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가끔 이유 없이 저기압인 날들이 있다지만, 사실 난 사소한 일들에 자주 행복을 느끼는 편이다. 예측이 안 되는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하다가도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들으면, 재밌는 유튜브 동영상 한 편을 보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문장을 읽을 때면, 수백 번 돌려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를 또 볼 때면, 어김없이 행복감에 취한다. 그걸로 다가올 날들의 불확실성을 잠깐 잊고 ‘다 잘될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다. 난 때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망을 품는다. 그것도 아주 맹목적인 희망을. 이러한 특성은 날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위기에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 몇 달 전에 수월하게 브리핑했던 내용이라 연습을 따로 안 했다가 브리핑 당일 뻘쭘하게 절던 기억, 복잡한 규정들 하나하나 신경 쓰기 귀찮아서 잔꾀를 부렸다가 속수무책으로 걸린 기억, 한 번 칭찬받은 거 가지고 자만하다가 버르장버리 없다고 혼났던 기억, 타인의 행동을 지레 오해하고 화냈다가 후회한 기억. 날 실패로 몰아간 일들은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내가 옳다는 확신, 그 잘못된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에게 가지는 확신이 분명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그게 날 취약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에 대한 의심일 것이다. 요즘 내가 흠뻑 빠진 가수가 한 명 있다. 바로 래퍼 카니예 웨스트다. 힙합을 잘 듣지 않는 편이지만,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이 내 편견을 깼다.
카니예 웨스트는 그냥 래퍼가 아니다. 프로듀서 겸 래퍼다. 그리고 이러한 꼬리표는 그가 신인 시절 래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당시 미국 힙합은 할렘 가로 대표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니까 가난을 숨기기 위해 금목걸이 주렁주렁 걸고, 허리춤에 총 차고, 교도소 몇 번쯤은 다녀와야 인기 있는 래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니예 웨스트는 시카고 출신에 교수 어머니의 아들로, 가난한 래퍼들이 받지 못했던 교육을 원 없이 받으며 자랐다. 사람들은 그를 책가방 래퍼라 놀렸지만 그는 음악을 잘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는 프로듀서였다. 바닥에서 시작한 다른 래퍼들은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듯이 카니예 웨스트로부터 공짜로 곡을 받으려 했고, 그는 유명세를 얻기 위해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 동료가 카니예 웨스트에게 조언을 한다. 누구도 당신의 프로듀싱을 따라갈 수 없다고. 당신은 분명 성공할 거라고. 지금처럼 바닥과 이상 사이의 공간을 창의적인 에너지로 채울 수 있다면 누구보다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단,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해야 한다고.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자신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카니예 웨스트가 다른 래퍼들에게 더 이상 곡을 주지 않자, 래퍼들은 라디오와 TV에서 그를 까내리기 시작했다. 능력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그가 만난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였다.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거지.
넌 정말 좋은 아이지만, 자신감이 넘쳐서 겸손한 아이인데도 거만해 보일 때가 있어. 그걸 고치라는 뜻은 아냐. 자신감은 좋은 거야. 다만, 거인이 거울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법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하늘 높은 곳에 존재할 수 있어. 난 이게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 눈엔 그 거인이 보이거든.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만 과하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 어쩌면 그게 ‘꿈’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자신에게 능력이 있어도 확신에 눈이 멀어버리면, 그러니까 희망이 앞을 가려버리면 감각을 잃고 말 것이다. 위험요소를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을. 능력은 완성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퇴화한다. 마치 근육처럼.
배부른 사람은 갈망할 수 없다. 배고픈 자만이 먹잇감을 찾아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불안을 인정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우리네 사회의 위험요소를 인지할 수 있는 감각, 그것이 바로 불안일 테니까. 불안이 우리의 시야를 트여 줄 테니까. 결핍이 행복을 더욱 빛낼 테니까.
네게 세상을 줄 테니,
언제든 도로 가져갈 수 있단 걸
명심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