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

The 1975- If I Believe You

by 이브와 아담

신앙심은 내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학창 시절부터 대학교 초반부까지, 기독교는 내 자아 형성에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영향을 끼친 요소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경구절을 외울 때마다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는 어느 부자 전도사님의 말씀 덕분에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그때는 종교에 대한 철학적인 궁금증이나 생각보다는 친구들과 놀고 문화상품권을 받기 위해 주말마다 교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뚜렷하게 기억나는 마음의 결핍이 없었고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때의 경험이 내가 나중에 기독교 공동체들의 전도를 믿지 못하게 된 무의식적 동기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면서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이끄는 것이 과연 그들의 말마따나 진정한 신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인가? 실제로 그 전도사님은 이 방법으로 수많은 나 같은 아이들을 교회로 모집시켰고 나중에 그 교회의 장로가 되셨다. 하지만 그분의 방법은 아이들이 진정 종교의 필요성을 느껴 교회에 머물도록 할 수 없었고 아마 나 포함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업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흘러 대학생 때 다시 그 교회에 가서 이제는 장로님이 되고 앞머리가 하얗게 샌 전도사님을 우연히 뵈었을 때 그분은 나의 인사를 받지 않으셨다. 내가 미우셨는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지레짐작해서 두려움에 참새만한 목소리로 조용히 인사드려서 못 들으셨는지 아니면 교회에 신자들을 육성하겠다던 그분의 일명 ‘문화상품권 방법’에 깊은 회의감과 부끄러움을 느껴서 그러셨는지 내가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분이 자식들한테만큼은 이런 ‘보상 방법’을 써서 나중에 상처 받으시는 일이 없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교에 와서는 친한 친구의 권유 때문에 CCC라는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가서 종교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때도 별생각 없이 새내기의 친목도모 욕구로 좋은 기회다 싶어 나름 열심히 생활했다. 어릴 적 교회 친구들보다는 대학교 친구들이 확실히 종교를 진지하게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보였고 아마 처음으로 종교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궁금한 내용,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날 CCC로 이끌었던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친구의 대답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 친구는 성경의 내용에 있어서는 그 진위여부를 판단하지 않기로 작정했는지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하나하나를 궁금해하는 내 태도를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긴 것 같다. 또한 술 금지, 동아리 내 연애금지가 CCC 내 버젓한 규율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이 동아리를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에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성경 자체가 기록자가 속한 공동체나 승리자에게 유리하도록 수정되고 우화가 가미되는 여느 다른 역사서의 기록 방식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런 믿음이 맹목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신앙이 절대적이라지만 그걸 받아들여 종교라는 이름으로 발현하는 개개인의 행동양상은 천차만별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아직 종교에 발을 담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그 정도로 바닥을 찍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아직 예수님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종교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바로 종교가 결핍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핍된 마음은 사실 다양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제시되듯이 상실의 마음은 다른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고 연인과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음악으로 결핍을 받아들이고 치유한다. 음정이라는 마법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랜다. 종교가 인간의 결핍을 채워주고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면 나에겐 음악이 종교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적인 치유는 다른 방법과는 달리 고통의 뿌리와 근본부터 해결할 수 있다고. 만일 정말 그렇다면 왜 그들은 매주 교회에 나가는가? 우리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 속 고통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다. 단지 인정하고 무뎌진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영국 밴드 The 1975의 노래 If I Believe You의 가사를 보면 신앙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I’ve got a god shape hole, that’s infected
나에겐 커다란 상처가 생겼고 점점 커져만가
And I’m petrified of being alone now
이젠 혼자 있는게 무서워
It’s pathetic, I know
한심하지, 나도 알아
And if I believe you
내가 당신을 믿는다면
Will that make it stop?
고통이 멈췄을까?
If I told you I need you
만일 내가 당신이 필요하다 말했으면
Is that what you want?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였을까?
Showing me consciousness is primary in the universe
당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온 우주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If I’m lost, then how can I find myself?
내가 길을 잃었다면 어떻게 날 되찾을 수 있을까?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에 따르면 예로부터 인간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상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우리 조상들은 번개, 파도, 태풍 등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자연현상에 신들의 이름을 붙여 우리보다 위대한 존재들의 형상을 상상하고 창조했다. 우리 마음 속 허전하고 슬픈 구멍도 단순한 몇 개의 단어들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고 이를 치유해주는 사랑 역시 눈에 보이지 않으며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통해 과거의 상처가 아물고 구멍이 메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위의 가사에서 화자가 얘기하는 대상에 신이 아니라 연인을 대입해도 그에 부합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연인과 소통하고자 하고 하루의 슬픔을 치유받으려 하며 응답이 없으면 슬퍼하고 연락이 오면 기뻐하지 않는가. 사랑도 분명 실존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또 다른 신이다.


내게 무섭도록 필요한 게 한 가지 있어.
그게 무엇인지 내가 꼭 말을 해야 하나?
신앙. 그것은 신앙이야.
내게 신앙이 있다면, 밤중에 밖으로 나가서
별들을 그릴 수 있을거야.
-빈센트 반 고흐


The 1975- I like it when you sleep, for you are so beautiful yet so unaware of i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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