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2014)
인간이 나이를 먹듯이 세상도 나이를 먹는다. 인터스텔라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노년기이다. 지구의 모든 자원을 활용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던 세상의 전성기와 황금기를 거쳐 지구가 병들어버린 영화 속 시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영화 초반에 지구의 마지막 세대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던 대지가 우리를 멸종시킬 것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인터뷰 내용은 미세먼지로 고통받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먼지로 인해 척박하게 변해버린 대지가 모든 농작물들의 씨를 말리고 일용할 양식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영화 속 지구의 모습은 마음 아프게도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지구 온난화와 열대화로 인한 동식물들의 이주에서 알수 있듯이 우리가 일용할 수 있는 농작물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비옥한 대지를 자랑했던 미국의 밀 생산량 역시 예전만 못하다. 우리 역시 대위기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흔히 아이가 어른이 되면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창의성을 잃어버리듯이 영화 속 노년기의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앎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모험정신을 잃어버렸다. 이에 대한 쿠퍼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모두 우리의 본질을 잊은 것 같아요. 우린 탐험가이자 개척자였는데... 옛날엔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과 미래에 대해 궁금해했어요. 근데 지금은 땅만 보면서 먼지투성이 지구를 걱정하고 있죠.
하지만 지구의 전성기를 경험한 쿠퍼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전성기를 얘기하며 지금의 악몽을 그는 회상한다.
내가 어렸을 땐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어. 장치, 아이디어.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았지. 하지만 60억 명이, 상상해보게. 모두가 모든 걸 가지려고 했어. 지금 세상도 나쁘진 않아.
인류는 끝없이 위기를 경험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듯이 우리가 지구의 죽음이라는 위기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기를 던져놓고 감독은 인간이 답을 찾을지 시험한다.
하지만 쿠퍼를 비롯한 우주비행사들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들은 우주 분야에서 전문적인 NASA 출신이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외계행성에서 그저 사회 초년생처럼 실수만 저지를 뿐이다. 욕심이 앞서 경고를 인지하지 못하고 예상되는 변수 또한 계획해놓지 못한다. 그들은 항성 간 이주계획에서 완전히 실패한다. 그들의 이성적인 판단과 상황에 대한 계산은 자연 앞에서 무력하다. NASA에서 최고로 여겨졌던 만 박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신을 탓하며 생존의 본능만 앞세워 쿠퍼와 브랜드 박사를 죽음의 위기까지 몰고 간다.
그들은 이미 실패했다. 12명의 개척자들이 탐사했던 대부분의 행성이 인류가 살기 부적합했다. 이미 연료도 떨어진 상태이다. 하지만 최고로 추앙받던 만 박사가 인내심을 잃은 것과 달리 쿠퍼는 계속 인내한다. 쿠퍼는 블랙홀이 끌어당기는 중력에너지로 인듀어런스(Endurance)호를 타고 지구의 죽음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리운 자식들과의 만남과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그는 브랜드가 그녀의 사랑이 있는 에드먼즈 행성으로 도달하게 하기 위해 블랙홀로 기꺼이 몸을 던진다.
모든 것을 내던진 그가 블랙홀에서 마주한 진실은 바로 ‘순수’다. 아이의 창의성과 순수함. 쿠퍼의 딸인 머피는 처음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알고 있었지만 쿠퍼는 아이의 순수한 관점을 어리고 모른다는 이유로 평생동안 무시했었다. 책장 뒤에 유령이 있다고 얘기했던 머피의 주장을 터무니없이 여겼던 쿠퍼는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그 유령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릴 적 머피가 쿠퍼에게 떠나지 말라고 얘기했을때 그는 떠나지 말았어야 했음을 블랙홀 안에서 깨닫는다. 결국 그들을 구원한 것은 어른의 판단과 계산이 아니었다. 브랜드의 사랑 에드먼즈의 행성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중력에 대한 머피의 직감은 결국 인류 구원의 열쇠였다. 쿠퍼는 사랑과 중력이 차원을 초월하는 자연의 힘이라는 것과 결국 자신이 틀렸으며 가지 말라고 옷소매를 붙잡고 울부짖었던 딸이 옳았다는 것을 절절히 인정했다. 때로는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위기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결국 자식에게 있어 추억의 조각이야. 부모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유령같은 존재가 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