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칼 세이건
어릴 적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룡을 좋아했기 때문에 공룡 박물관에 가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닌 알고 있던 지식을 또 만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주, 사후세계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그 광활하고 깊은 성찰에 전율하기도 했었다. 어릴 적에는 고고학자, 천문학자가 꿈이었다. 그래서 동생과 같이 미술학원에서 쓰는 붓 몇개와 문구점 돋보기를 들고 한강에 가서 공룡의 뼈가 있나 찾아보기도 했던 기억이 유년기의 행복했던 추억으로 자리한다.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붓질할 땐 공룡의 뼈가 부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반팔 입고 코 훌쩍이며 한강의 흔한 돌 가지고 세심한 붓질을 하며 흙먼지를 터는 실습(?)을 한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 보는 건 지금도 좋아한다. 운 좋게 별 많이 보이는 지역에서 지낸 적이 많았기 때문에 이젠 서울 하늘을 보면 심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교과 과정의 수학을 따라가기 버거워했던 나로서는 천문학자의 꿈을 접고 문과로 진로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글쓰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칼 세이건이 말했듯 인류가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적 성장도 한몫하지만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겼던 시인의 예술적 감성과 묘사가 더욱 컸다.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이자 1997년에 개봉했던 영화 콘택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외계 기술로 도착한 아름다운 베가성의 천체를 직접 두 눈으로 보며 황홀감에 빠져 내뱉은 첫마디가 이곳에 나 같은 과학자가 아니라 시인을 데려왔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예술적 감성은 인간 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동기이자 원천이었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걱정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난 듯하다. 새천년을 앞두고 1996년 세기말에 죽은 그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퇴색될 것을 염려하였고 이는 책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가 염려했던 것처럼 흘러가는 세계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켠에 괜히 죄책감이 피어오른다. 소수자를 무시하고 특정 인종을 혐오하고 국가와 집단을 지키려 하지만 전 인류와 지구의 통합을 지키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집단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 시대의 모습을 그가 본다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강대국들은 적국의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먼저 핵무기를 제작하고, 군비 감축을 제창하지만 아직도 군비는 세계적으로 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다. 칼 세이건은 이러한 인류파멸적인 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갖고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출중한 논지들을 개발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행성 지구의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야 하고, 그리하여 무감각 상태에 빠진 인류를 그 깊은 잠에서 깨워야 했다.
-‘코스모스’ 중
코스모스(Cosmos)는 혼돈(Chaos)의 반대말이다. 즉 코스모스는 자연의 규칙이다. 칼 세이건은 이 코스모스에 대한 연구가 우리가 우주 앞에 모두 평등하고 개개인이 소중하며, 이 작은 창백한 푸른 점 안에서 서로 이렇게 혐오하고 싸우는 것이 정말 아무 의미없는 에너지의 낭비인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코스모스의 연구, 우주와 자연에 대한 연구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그동안 역사 속 잊혀진 지성들의 연구를 통해 우리 모두가 우주의 먼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때문에 우리가 우주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열된 인류공동체가 다시 하나로 뭉쳐 한마음 한뜻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지의 바다인 우주를 적극적으로 항해하여 이미 포화상태인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국가적인 지원이 아직 부족한 상태이지만 인류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해냈다.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몇 백 광년 떨어진 별들의 구성 원자, 거리, 밝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보이저 1, 2호와 전파를 통해 드넓은 우주에 인류의 존재를 당당히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칼 세이건은 미래의 전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과거도 탐구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기 위한 논리로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에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지구를 중심으로 세계가 돈다는 천동설은 종교와 결합하여 인류가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을 안겨주었으며 노예제도를 정당화시키는 대표적인 신화(?)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갈릴레오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등 코스모스의 정확한 분석을 완료했던 학자들의 이론이 탄압받았고 이로 인해 과학의 발전은 몇 세기동안 지체되었다.
칼 세이건은 유명한 학자들 뿐만 아니라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졌던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들의 이름도 언급한다. 그는 과거 지구의 지식 집합소였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어 당시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던 과학 이론들이 대부분 유실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만일 사라진 과학의 기회들을 잘 활용했었더라면 인류의 과학기술은 지금과 비교도 못할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카오스가 파괴라면 코스모스는 창조다. 몇백억년 전 대폭발로부터 시작해서 수소 원자들이 결합하여 더 큰 원자들을 만들었고 이러한 지속적인 결합은 별과 행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핵융합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을 때까지 살아간 별들은 초신성이나 블랙홀이 되어 우주라는 캔버스에 새로운 충격파를 가했고 이러한 창조와 파괴의 과정이 반복되어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으로 탄생했던 지구의 원시 생명체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여 의식을 갖춘 우주의 먼지덩어리인 인간이 되었고 이 먼지덩어리가 스스로의 근본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는 지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기적이다. 인류 한 명 한 명은 정말로 기적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창조의 결정체들은 철저히 규칙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음악이자 예술작품이다.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의 33승 분의 1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코스모스’ 중
코스모스에 대한 지속적 연구로 드디어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며 인간 절대주의라는 착각의 안경이 벗겨진다.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우리가 전국적으로 통신망을 확립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반면 고래는 원시 시대부터 그들만의 특정 주파수가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원시 시대에 대규모 통신망 구축을 완료했던 것이다. 혹시 고래는 이미 그들만의 주파수로 외계인과 잦은 대화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같은 행성 안에 살고 있는 종들과도 대화를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어떻게 외계인과 대화를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그 뜻은 즉슨, 인류 공동체가 하나가 될 기회 또한 아직 많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