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1988)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인데, 아키라가 그렇다. 1988년 일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현재 일본에서 상영되는 수많은 애니메이션보다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다. 그냥 뛰어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소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앞으로도 이 정도의 기술력과 퀄리티를 지닌 애니메이션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키라는 일본 버블경제 시대(1970~80년대) 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호황의 시기를 겪고 있었을 때 그때의 경제력으로도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가장 큰 돈을 투자해 만든 작품이 바로 아키라이다.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이 1초에 사용하는 셀보다 더 많은 셀을 당시 아키라에서 사용했고 작화 또한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 만든 작품인 만큼 퀄리티가 무서울 정도로 높다. 다 제치고 기술적, 미학적 부분에서만 본다 해도 아키라는 인정된 명작이다. 거기에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반영한 종말적 스토리, 사이버펑크적 분위기, 그로테스크한 연출은 아키라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게 부족함 없이 경제호황 속에서 살던 일본 사회 안에 있던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아키라를 혐오예술의 대명사로 만들었을까. 영화는 전체적으로 과잉의 키워드에 집중한다. 핵폭발 30년 후 다시 재건된 네오 도쿄는 겉으로 보기엔 발전되어 보였지만 고도의 성장에 비해 국민의 의식은 그에 따라가지 못해 온갖 부패, 탐욕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공익보다 사익을 탐하는 정부 관료들, 그런 정부에 대항하는 반정부세력, 고도의 교육열에 스트레스를 받아 일탈하는 폭주족 학생들, 과잉의 시대에서 더욱 자극적인 것을 찾는 국민들. 우리 세상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네오 도쿄에서 묘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뎌지는 자극을 보완하기 위해 끝없이 새롭고 더 강력한 자극을 찾는 네오 도쿄 속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가 계속 쌓인다면 결국 폭발할 것이다. 우리의 감각도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세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폭발이라는 무의식적 공포를 일본은 이미 역사를 통해 경험했다. 핵 폭발에 대한 공포. 영화 첫 장면이 핵폭발로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공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폭발로 귀결되는 사회 문화적 과잉의 공포를 불안정하고 잠재적으로는 강력한 분노를 가진 사춘기 소년과 연결시키는 대담한 연출을 감행했다.
작중에서 정부는 대담한 실험을 감행한다. 정부는 우주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군사적 목적에 활용할 초인적 무기로 변모시키기 위해 ‘아키라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초인적 에너지를 아키라라고 부르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한 어린 실험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이 에너지를 극도로 활성화시켜 무기화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군사력 강화를 목적으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우주적 에너지로 불리는 아키라를 영화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건물을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로켓을 발사하는 등 인류를 더 강인한 존재로 발전시키는데 쓰이는 에너지가 아키라이다. 즉 아키라는 가능성이라 볼 수 있다. 이 가능성이라는 힘은 인간을 지구상에서 막강한 존재로 만들어왔다. 불가능한 일들을 인간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해내고 한정된 땅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가능하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어른들은 이 순진하고 강력한 힘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개조시키기 시작했다. 우주를 품고 있던 아이들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른의 욕심에 의해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 한 어린 실험체가 초인적 힘으로 핵폭발을 예견했을 때 두려움에 떨던 와중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분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동료 실험체들과 몰래 나누는 것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열등감이 많은 자에게 아키라와 같은 절대적 힘을 준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테츠오는 폭주족 무리의 일원이었는데 항상 절친 카네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능력 없던 일원이었다. 항상 낮은 자존감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속에 분노를 축적하고 있었다. 테츠오는 실험체에 의해 우연히 초인적 힘을 얻게 되자 불이 기름을 만난 것처럼 축적해온 분노를 세상에 터뜨리기 시작했다.
열등감에 찌들어 있던 테츠오는 막강한 힘을 얻게 되자 1인자가 되고 싶어했고 과거 핵폭발로 도쿄를 무너뜨렸던 아키라를 찾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아키라는 이미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 않았다. 디스크 속 데이터로 저장되어 냉동 보관되고 있었다. 정부가 끝없이 생체실험을 지속한 탓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시대 아이들, 아이들의 가능성마저 없애버렸다. 분노한 테츠오는 힘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남은 실험체들은 기도를 통해 신적 존재인 아키라를 불러 핵폭발을 일으켜 테츠오를 저지한다.
어른들이 저지른 과오를 아이들이 정리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영화 속 핵폭발은 파괴적이지 않고 신성하게 등장한다. 고도로 발전했지만 타락으로 물들여진 도시를 아이들이 깨끗이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마지막, 핵폭발이 발생할 때 실험체를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던 과학자는 말한다. 우주가 생겨나고 있다고. 그만큼 개개인이 지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번창하거나 종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