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지 않으며 살아 간다는 것.
가끔 과거를 회상하다가 보면 어릴적 나의 꿈은 지금보다 많았던 것 같다. 직업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꿈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보면, 제트팩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 구름 위에서 노는 것,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가는 것, 10층짜리 호화저택을 짖고 살아보는 것 등의 꿈들을 꾸었다. 사실 저보다 기상천외한 꿈들을 많이 꾸었던 것 같다. 근데 어젠가부터 시간은 흐르고 세상의 이치를 알면서 그 꿈들이 접히고 또 접혔다. 이제 꿈들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어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아직 주변에서는 꿈이 너무 많다며 현실을 보라고 말한다. 난 아직 어린왕자가 되고 싶다. ‘꿈’이란 것,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릴 적부터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는 삶을 살라는 그런 말을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짜로 꿈에 갇혀서 살았다. 난 항상 내가 하고싶은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장래희망을 이루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포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질문의 항상 마지막에는 현실은?이라는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 나왔다. 그럼에 마지막에는 현실에서는 내 이런 달콤한 꿈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우리는 지금 현실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상상만으로는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꿈을 꾸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월트디즈니의 명언 중에는 ‘꿈을 꿀 수 있다면 현실도 가능하다.(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이라는 말이 있다. 상상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꿈이 현실로 가능하다는 말은 모순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바라보던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내가 바라던 유토피아에 산다는 말인 것일까? 과연 어떤의미로 한 것일까? 나의 나름대로의 해석은 '내가 추구하던 삶을 사는 것.'이라는 풀이를 했다. '내가 바라던 내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저 말에 대한 것을 많이 포기하고 사는 것 같다. 세상은 변하는데 우리는 자신이 바라던 것이 되는 것이 아닌 사회의 빈자리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주변의 말을 조금씩 들어보면 어떻게 하고싶은 것들을 다하고 살 수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는 사회의 빈자리에 앉게되면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기에 다른 작은 것들도 포기한다. 마치 자신이 어릴 적 꿈꿔오던 결혼, 휴가 그리고 집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는 그것들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사막 위 오아시스를 그려놓은 신기루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실제 이룰 수 있는 것들도 신기루라고 생각하고 지나친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채 우리는 그렇게 물한방울 없는 사막 위를 걷게 된다. 근데 그러지말고 한번쯤은 신기루라도 지나치지 말고 다가가봐도 괜찮지 않을까? 혹시나 그 신기루로 되어있던 오아시스가 진짜 오아시스로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깐. 그러면 다음 목적지도 나올테니깐. 한번쯤 허망한 꿈을 목적지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럼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알게되겠지 과연 이게 내가 바라던 나였는지 말이야.
나는 오늘도 허망한 꿈을 꾼다. 남들이 비웃는 그런 꿈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남이 비워놓은 자리를 앉아서 내 자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먼 훗날에 내가 앉을 자리는 이미 마련되어있다고 믿는다. 뭐 자리가 없으면 바닥에 좌판이라도 깔아서 내가 하고 싶은 자리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내가 되기위해 세상이 만든 자리에 대해 연연하지 않아야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꿈을 쫓으면 언전가 내가 꿈꾸는 내가 소망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