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은 인간을 만든다.

아무리 이점이 강한 선수라도, 폭력과 인성은 거스를 수 없다.

by 제이슨박

-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 과거 배구선수 이자영, 이다영 선수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국내 배구에서 퇴출된 후의 가장 큰 사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모든 성과를 엎어버릴 수 있는 폭력에 대한 중요성


우리는 사실 어느 정도 신체적 폭력에 관해서는 중요성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 무성해진 만큼, 우리는 언어폭력에 대해서도 중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과거 국민일보에서 취재한 "코로나19로 학교폭력은 줄었을까?"에 대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모든 폭력이 디지털화되고, 일명 과거에 흔했던 '빵셔틀' 등의 폭력 행동이 '데이터 셔틀'과 같은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현재, 어떠한 폭력도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체육계에서 가장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심석희 선수 이전에 이슈화된 이자영, 이다영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그들은 학교폭력의 전과로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국내 배구연맹에서는 국내 활동을 하지 못하게 퇴출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 13일 그리스 대사관을 방문한 것으로 곧 출국을 할 것이라는 것을 지제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의 행적이 현실에서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행동이 과거 '공부 못하면 체육이라도 해야지.'라는 인식과 '체육 하는 아이들 중에는 일진이 많다더라.' 하는 인식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과도기에 놓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 가지의 예시를 더 들여다보자, 바로 이번에 이슈화되고 있는 '심석희 선수'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그녀가 과거에 어떠한 행동을 하였든 상관은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학교폭력을 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왜 현재 이러한 현상을 겪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행동이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가 지난 재판에서 직접 진정한 내용으로 그녀의 인성 논란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판이라는 것은 그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정해지는 것으로 감출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들로 한 가지 얻어가는 것이 있다. 아무리 누군가를 비하하고 욕을 하더라도, 잘못된 행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 평창올림픽 결승 경기에 대한 고의적 충돌은 완전히 부당한 행위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며 이는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명인들에만 일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8월, 경북 예천의 한 중학교의 학교폭력 사건이 이슈화 된 적이 있었다. 이는 교내의 양궁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중학교 3학년의 학생이 1학년 학생의 등에 활을 쏜 것이었다. 물론, 3-4미터 안의 거리에서 쐈다고는 하지만 이는 분명한 살인미수이다. 양궁은 사격과 마찬가지로 장비가 엄격하게 관리되는 점을 따져야 한다. 아마도 위의 학생은 현재의 평판으로 보아서는 자격정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누구나 죄책감과 조금의 거짓된 삶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에 선처가 가능한 선에서, 딱 거기까지만 행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모든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의 평판은 돌도 돌 것이기 때문이다. 묵인은 안되지만, 용서가 되는 그러한 행동을 했다면, 이는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서가 안 되는 것, 예시로 당시의 행위가 현재에도 용납이 안되고, '그때는 젊어서', '그때는 내가 아직 몰라서'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어느 직원이 이직을 할 때 평판조회라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제의 행동이 오늘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평판의 카운트 메이커 '학교', 그리고 '학교 폭력' 아이들의 인성 문제일까?


흠... 이러한 문제라면 참 갈등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인성문제라 하기도 그렇고, 아니기도 할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2학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무리 지어 살아가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본능이 자극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의 첫걸음으로 도태와 무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을 보면, 기훈과 상우가 속해있던 무리는 사실 우리가 아는 사회적 약자가 밀집되어있는 곳이다. 사회적 약자는 사회, 군중 속에서 쉽게 도태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들은 뭉쳐서 더 큰 무리를 이길 수 있지만, 사실상 그리 쉽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과정이 그 당시에는 교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군중 속의 무시와 시기, 질투는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은 자신의 무리에서 타 무리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많이 힘들 것이다. 자신의 영역만을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타인의 영역을 수용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탄압 즉, 학교폭력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폭력이 이루어지는 과적은 한 집단이 나머지 집단을 탄압하고 지휘계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욕망에서 생겨난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사회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되는 바이다. 대게 학교에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면,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다른 외부의 같은 압력이 들왔을 경우가 크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성'이라는 관점이 참 어렵게 생각된다. 하지만 인간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인성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탄압이라는 행위를 선생님들이 잘 제지해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누군가의 평판이 나빠지거나, 비하로 인해 나빠지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다. 가뜩이나 코로나 19로 사회의 심리가 불안해지고, 내년의 대선으로 인해 민감한 시기에 이러한 일들이 발생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사회 균열의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바이기도 하다. 어느 한 구석의 균열은 빨리 막지 않는 한, 더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