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의 초점은 어디로...

과연 우리는 청소년이 자살하는 이유를 학교폭력에만 맞춰야 하나.

by 제이슨박

지난 2일, 대전시 서구 학원가에서 오후 10시경 여중생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는 일제히 타살의 흔적은 없으며,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고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타살이 아닌 채로 사건은 종결될 것 같다. 학업 스트레스로 투신한 사건이 될 것이다.

[출처 = 대전 MBC]


이게 타살이 아닌가?

과연 이게 타살이 아닌 것인가? 학업 스트레스... 스스로 받은 스트레스는 맞지만, 원인은 따로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은가? 한국의 교육시스템만 봐도 말이다. 아마 학교, 부모에 의한 친구들과의 경쟁심에 발생한 억압이 학업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게 자살인가 타살인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히 제고될 필요가 있다. 2020년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 중 1위가 학업문제, 2위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문제는 1, 2위가 합치면 전체의 65.3%에 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일 연도 자살 시도율은 54,948명이었다. 중1~고3까지 순위를 나타내면 중1이 가장 높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살 시도율은 내려갔다.


학업문제로 중1 학생들이 가장 자살 시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성인의 자살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성적문제가 동일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외부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나의 견해다.


교육부의 "멈춰!"는 누굴 위한 멈춤인가.

[출처 = 스브스뉴스, 2021년 3월 7일]

"멈춰!"라는 캠페인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는 교육부가 2012년부터 2014까지 도입했던 캠페인이었다. 학교폭력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청소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연 학교폭력을 멈춰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관습적인 이 교육문제를 멈춰야 했던 것일까. 지금은 고뇌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학교폭력 또한 멈춰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학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 역시 교내에서 이루어지면 학교폭력, 가정에서 이루어지면 가정폭력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학업 폭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사회에 1대 악이 더 생겼다. 5대 사회악인 것이다.


나 또한 우리나라의 이러한 교육시스템의 악습을 받고 자란 성인으로써,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의 후대에게는 이러한 시스템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학업시스템의 잘못된 행동에 "멈춰"를 외칠 수 있을까?


중국을 향해서? 서양을 향해서?

[자료출처 = KBS, 2021년 09월 06일]

중국은 최근 사교육을 전면 금지시켰다. 물론, 전면 금지는 아니다. 하지만 사교육기관을 비영리단체로 가입을 시켰다. 이는 돈을 벌지 말라는 뜻이니, 금지가 맞다. 하지만, 암암리에 사교육을 받는 이들은 있을 것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야겠지만, 사교육 금지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이를 통해 3년 이내에 사교육을 현저히 줄이고, 출산장려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중국이나 한국, 일본의 경우에는 성적에 순위를 매기며 경쟁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나의 생각은 성적의 개편이다. 고교학점제도 물론 중요하다. 학생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는 것.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학생의 경쟁을 줄여야 된다고 본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절대평가의 적용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사교육이 활성화되어있지만, 한국처럼 기초과목에 대한 사교육은 별로 없다. 프랑스어, 야구, 골프 혹은 미술이나 음악 등의 사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국, 수, 사, 과, 영에 매달리지 않는다. 또한 활용도 면에서 아주 좋다. 일명 한국에 학군에 속해있는 유명 학교들을 보면, 외우게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해당 이론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에 집중을 둔다. 경쟁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나는 이 두 가지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좋은 집에서 평생 살 수는 없지만, 모두가 12년 동안 좋은 학교에서 사는 것

위의 주제는 유현준 건축사무소의 유현준 교수가 한 말이다. 모두가 좋은 집에서는 살 수 없다. 그리고 모두가 더 특별한 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공교육이 활성화가 되고 더 좋은 퀄리티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 특별한 교육을 받는 이들과 비슷해지지는 않을까. 학교를 좋게 짓는다면, 모두가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지만, 모두가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듯이.

사라진 사교육보다는 특별한 사교육을 만들게 하고, 뻔한 사교육, 교과목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학교보다, 나의 가치와 열정을 검증받을 수 있는 학교를 학생들이 다녔으면 좋겠다. 학업에 의한 자살을 공부 스트레스도 못 견뎌내는 실패자로 생각하지 않고, 공부에 죽은 안타까운 소중한 인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평판은 인간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