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에 발을 들이다.

나는 이제 '무엇이든 모르는'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by 제이슨박

나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새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조금은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근 한 달 간의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려고 한다.

9월 27일의 한 달 전, 8월 27일(토요일)의 나는 텍사스 여행을 마치고, 터키로 가는 비행기로 올라탔다. 항공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터키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나에게는 매우 촉박한 비행이었으며,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설렘이 있었다. 물론, 이 설렘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설렘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매우 설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 입학이라는 나의 큰 결정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미국을 가기 전, 신입생 세미나를 통해 동기들과 다른 선생님들을 보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곳으로의 여정에 두렵기도 했지만, 나의 도전을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지방의 사립대를 졸업한 학부생이었다. 그런 내가 수도권의 내놓으라는 대학교의 대학원에 합격했다니... 나의 연구역량을 더 크게 펼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나의 크나큰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도착한 후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새로운 대학과 내가 꿈꾸던 학자의 길을 가기 위한 장으로 간다는 무거운 짐 또한 졌다. 나를 지지해주는 부모님의 격려와 함께 말이다.

9월 1일 목요일, 나는 새로운 학교의 교문을 걸어 들어갔다. 나의 '석사'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곧장 학생증을 수령하기 위해 교내 은행으로 향했다. 직선으로 뻥 뚫린 학교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또 다른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학원생이라는 것, 그리고 좋은 학자가 꼭 될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은행에 들른 후, 나는 대학원 건물로 곧장 향했다. 이전 대학교에서의 졸업증명서를 제출해야 했으며, 첫 수업의 오리엔테이션도 참여를 해보았다(물론, 이 수업을 수강 신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아주 좋았다. 내가 대학원에 첫 발을 들인 그날은 내가 기대한 것만큼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서의 첫 주간은 내가 어떠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하는 미디어 문화연구에 대해서 많이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되었기도 하다. 나는 '미디어 문화연구의 이해', '영상문화와 문화 정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과 문화'라는 수업을 결정적으로 듣기로 했다. 내가 미디어 생태학에도 관심이 있으며, 수용자 문화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일까? 그 수업들이 나에게는 -이름 만으로- 참 흥미를 돋운 주제로 다가왔다. 그러나 수업의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미디어 연구가 맞나? 교수님이 읊는 다양한 근대의 학자들의 이름이 너무나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래... '마르크스'까지는 좀 알겠는데... '푸고', '엥겔스', '리처드 호가튼'이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알던 미디어 연구를 조금... 아니 많이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미디어영상학을 전공하기는 했기에 그런 것일까? 나는 철학과도 아닌, 그렇다고 사회학, 인류학과도 아닌... 문화학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야 했던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는 추석을 맞게 되었지만, 교수님들은 나를 추석을 연휴라는 휴식 속에서 놓아주지 않으셨다. 책 한 권을 말씀하시면서, RP(Reflection Paper, 강독 보고서)를 쓰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까지 써보지도 않은 RP라는 것을 이제 매주 매 수업마다 하나씩 써야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한 과목당 최소 2번부터 최대 4번까지, 그 주의 책에 대해서 발제를 준비해야 했다. 나의 혼란은 더 가속화되었다. '발제란 무엇인가? 어떻게 써야 되는 것인가?'를 시작하여, '나는 어떠한 글을 써야 하는가? 내 글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나아갔다. 그 고민은 근 3주 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좋은 발제란 무엇이고, 좋은 읽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었으며, 너무나도 벅찬 기분을 주었다. 나는 더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학교를 10시 이후에 벗어나 본 적이 거의 드물었다. 나의 글에 대해 생각을 계속해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 책 한 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보충적인 공부를 어떻게 스스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먼저 입학을 하신 다른 선생님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발제문을 수없이 읽어보며, 발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단기간에 걸친 혹독한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이 훈련은 지금까지도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나의 주장은 무엇이며, 더 깊고 심오한 생각과 어떻게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하고 있다. 학자에 대한 보충적인 이야기를 더 찾아보며, 생각을 더욱 부풀려보기도 한다.

나 혼자서 학자의 길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나의 석사 첫 주의 주장은 이제 완전히 파괴되었다. 내가 있는 지금의 대학원에는 너무 따스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와 같이 입학한 동기 선생님들과 먼저 오신 선생님들의 도움은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따듯한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비록, 지금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첫 학기를 마친 후에 더욱 성장한 학자가 될 수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동료 선생님들이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나의 주장을 더 확고하게 할 수 있으며,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의 대학원의 첫 한 달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의 당황스러움에, 지칠 만도 했다. 그러나 발제 준비를 하면서 받았던 동기들의 격려와 다른 선생님들의 응원은 나를 더 활기차게 만들어줬다. 그럼에 대학원 생활로 누빌 수 있었던 학교라는 땅을 나는 더 힘차게 디딜 수 있었다. 나의 발디딤은 더욱 무거워질 수 있었으며, 그 의미는 더욱 깊어졌다. 이번 한 달은 석사라는 과정에서 회의가 아닌, 희망을 느꼈던 기간이었다.


그래, 나도 좋은 학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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