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계속 생각난다는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 2001)'를 보았다. 크리스마스 각자 연인의 선물을 사기 위해 버버리 샵에서 우연히 만난 두 연인의 이야기인데, 영화의 제목인 'Serendipity', 뜻밖의 기쁨, 행운처럼 나타난 두 남녀가 운명적인 사랑을 증명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내가 이번 글에서 이 영화를 언급한 것은 극 중에 한 대사가 나를 잡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다 계획되어 있고 우린 운명적인 짝을 만난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뭘까? 다 정해져 있다면 왜 살아야 하냐고? 이런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거야 삶은 잘 짜인 공연이 아냐, 대본도 감독도 없이 그냥 복잡하게 가는 거야.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시 떠나보낸다. 어릴 적에는 그러한 인연 모두가 소중해서 떠나보내기 싫어 울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풍파 덕인지 이제는 가끔 '굳이 떠나가는 인연은 잡지 않아도 된다.'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가끔은 생각이 나고 그립다. 아마도 그런 것들이 모아져 즐거운 추억들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며. 그렇기에 저는 그런 인연들을 만나러 자주 여행을 떠나려 한다. 바로 여행 중에 누군가와 어울리는 그 시간이 좋다는 이유로. 세상에는 다양한 여행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재밌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 전 친구와 한 호텔로 여행을 다녀왔다. 요새 흔히 말하는 '호캉스'(호텔+바캉스의 합성어)라는 것은 하려고. 처음에는 이러한 시간마저 버리는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음식을 시켜놓고 그저 방 안에서 논다는 상상은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들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떠났을 때에는 모든 여행이 그랬듯이 사뭇 달랐다. 친구와 같이 보기 위한 영화를 고르고, 무엇을 먹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그렇게 늦게까지 놀다가 눈을 떴을 때의 포근함은 마치 'Serendipity', 그 단어의 한 집합체였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매 순간, 그 뜻밖의 기쁨, 행운을 만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딱히 먹을 게 없어 분식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떡볶이와 튀김을 시키고 기다렸다. 그때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러나 서로 아는 사이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아니어서(사실, 껄끄럽다는 말이 가장 낫은 것 같다.)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가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로 아는 사이이기에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그는 그냥 잘 지낸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후에 많이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나는 곰곰이 다른 생각을 하며 그 집의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가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네가 껄끄러운 사람이 있다면, 굳이 친하게 지내려 하지 마. 서로 아는 사이더라도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그의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수긍을 했지만, 사실은 마음 한편에 그래도 인연인데 웃으며 끝내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도 알아. 굳이 떠나려는 사람을 잡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인연이었다면 좋게 끝내고 싶어."
그는 어느 정도 동의를 했다. 기가 막히게 그 타이밍에 떡볶이가 나왔고, 우리는 어색한 기류를 그 덕분에 풀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만 챙기면 되는데, 사실 그걸로도 벅찬데 나는 다른 사람들을 더 챙길 수 있을지. 나의 세렌디피티는 언제일까 하며. 나는 휴대폰을 열고 주소록에서 그 껄끄럽다는 친구의 이름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
"잘 지냈니?"
최근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며, 다시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녀에게 좋은 여행 되라고 말하며, 언젠가 내가 그곳으로 간다면 꼭 연락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운명적인 인연이 끝을 맺었다고 생각을 했다.
과연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사실 우연도 운명이라고 하면 또 수긍을 해야 할 수 있겠지만, 질질 끌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만약에 그 사람이 내게 운명이었다면, 나는 오늘도 휴대폰을 열어 그에게 문자를 해보고 싶다. 오늘은 잘 지냈냐며.
하루라는 여행을 매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그 날 저녁에는 많은 생각이 든다. 과연 나만의 색깔은 무엇인가. 나에게서는 어떠한 사람 냄새가 나는 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내 친구 철수는 솜사탕과 옥수수콘 같은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나고, 돌이는 슈팅스타를 먹는 것처럼 달달하지만 톡 쏘는 향이 나는데. 나는 어떠한 어떠한 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맛들이 모여 하나의 음식을 만들듯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나가는데. 나는 어떠한 향을 가졌기에 지금의 친구들을 만나고 사는 것일까. 나는 세상을 향해 어떠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