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기 전, 해야 할 일 목록을 적었다. 이름 짓기, 출산 용품 준비, 산후조리원 예약. 그리고 보험. 체크리스트 맨 아래 적힌 ‘보험’이라는 단어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불안을 파는 상품
솔직히 처음엔 거부감부터 들었다. 보험은 결국 불안을 파는 상품 아닌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 가정하는 것 같아 찜찜했다.
하지만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을 바꿨다. 액땜이라 생각하자. 내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도, 우리가 낸 돈으로 다른 누군가가 도움받는다면 나쁘지 않다.
2,880만 원의 고민
문제는 적정 가격이었다. 보험은 많은 사람을 모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다. 원가에 수당과 판매수수료까지 얹어지니, 내게 맞는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설계사를 만났다. 추천받은 보험 상품은 월 12만 원. 사은품도 푸짐했다. 유모차, 카시트, 공기청정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년 납입이면 총 2,880만 원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멈칫했다. 이 금액이 우리에게 맞는 걸까?
중복 보장의 비밀
우리가 태아보험을 알아본 이유는 명확했다. 아이의 선천질환과 산모의 위험상황 대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일상적인 질환은 실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설계사와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중복 보장을 제외하고, 입원 일수를 조정하고, 특약을 정리했다. 놀라운 건 같은 질병을 1, 2, 3단계로 중복 보장하는 항목이 많다는 것이었다. A라는 질병 하나를 여러 번 나눠 보장해 주는 식이다. 입원 일수도 마찬가지였다. 120일, 180일, 365일. 선택지가 많을수록 보험료는 올라갔다. 이걸 빼니 보험료가 확 줄었다.
최종 금액은 월 6.5만 원. 보험 3.5만 원, 실비 3만 원. 20년 납입, 30년 만기로 설정했다. 인터넷 후기에 나오는 푸짐한 사은품은 못 받게 됐다. 하지만 그 사은품 값도 결국 내 보험료라 생각하니 오히려 후련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아이의 선택권
납입 기간을 20년으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보험을 유지할지, 해지할지, 새로 가입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싶었다. 30년은 긴 시간이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려면 우리 형편에 맞는 선택이 필요했다.
통장에서 첫 보험료가 빠져나가던 날, 문득 생각했다. 커피 값치곤 비싸지만, 한 달 외식 한 번 줄인다 생각하면 감당할 만하다. 태아 특약과 산모 특약 때문에 가격이 낮진 않았지만, 출산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한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다.
보험을 세팅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것 같았다. 이 보험이 한 번도 쓰이지 않기를. 그게 가장 좋은 결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