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그리고 세 가지 원칙

by 기록하는아빠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아내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임신 중에도 출퇴근 시간에 관계없이 쏟아지는 피로, 부어오르는 다리, 울렁거리는 입덧.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마침내 찾아온 휴식이었다.


“수고했어.” 아내에게 말했다. 정말로 고생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은 ‘휴식’이라기보단 ‘준비’의 시간이었다. 아내의 월급이 사라지자, 우리는 다시 계산기를 꺼냈다.




줄어든 월급 앞에서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며 우리는 부지런히 가계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예산을 함부로 짤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그 원칙들이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




첫 번째 원칙: 할부는 독

신용카드는 꼭 한 번에 갚기로 했다.

할부는 달콤하다. 100만 원짜리 유모차를 10만 원씩 나눠 내면 부담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결국 다음 달, 그다음 달 생활비를 미리 쓰는 것이다.


우리는 모은 돈의 범위 안에서만 쓰기로 했다. 당장 살 수 없으면 모을 때까지 기다렸다. 급한 게 아니라면 중고를 알아봤다.


소비의 계획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게 첫 번째 원칙이었다.




두 번째 원칙: 빚은 다음 달로 미루지 않는다

신용카드를 썼다면 바로 갚았다.

체크카드를 주로 쓰고, 할인 때문에 카드를 쓴 경우엔 그날 선결제로 갚았다. 다음 달 청구서를 기다리지 않았다. 소비를 다음 달로 미루지 않는 방법이었다.


이 방식은 비상금 확보에도 유리했다. 정말 급한 일이 생기면 한 달 생활비를 미룰 여유가 생기니까. 거기에 더해 갑작스러운 경조사를 위해 매달 40만 원씩 따로 모았다.


예측할 수 없는 지출. 그걸 대비하는 게 두 번째 원칙이었다.




세 번째 원칙: 대출의 순차상환

가장 큰 고민은 집 대출이었다.

매달 나가는 원리금. 집을 살 때부터 대출 상담사와 오래 상의했다. ‘집 위치를 바꿔 원금을 낮출까?’ ‘40년 상환으로 월 부담을 줄일까?’ ‘이자만 갚는 상품은 없을까?’

고민 끝에 선택한 건 원금균등 순차상환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간단하다. 목돈이 생기면 원금을 먼저 갚는 것. 대출을 최대한 당겨 갚으면 원금이 줄어들고, 원금이 줄어들면 이자도 줄어든다.


‘이게 답이었어!’ 무릎을 탁 쳤다.


원금균등 방식은 인플레이션으로 원금을 갚는 투자 전략이 아니다. 하지만 순차상환을 활용하면 월 부담도 줄이고, 감당 가능한 원리금까지 빠르게 낮출 수 있었다. 우리에겐 가장 유리한 방식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

우리에겐 육아휴직 지원금이 있었다. 나라에서 보전해 주는 월급 일부. ‘이 정도면 잘해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60여 일이 지난 지금,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기저귀값은 생각보다 많이 들었고, 분유는 더 자주 사야 했다. 아이 옷은 금방 작아졌고, 예상치 못한 병원비가 나갔다. 친구의 결혼식 축의금도 있었고, 명절엔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야 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버텼다. 할부는 쓰지 않았고, 카드는 바로 갚았고, 집 대출 원금도 조금씩 줄여갔다. 육아 용품은 최대한 지인들에게 받았다. 수입의 일부를 모아 백일잔치, 그리고 돌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버티는 하루하루

쉽지 않다. 여유롭지 않다.

통장을 확인할 때마다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이렇게 빠듯하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친구들이 맛집 사진을 올리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버티고 있다.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계산기를 두드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육아휴직은 휴식이 아니라 준비였고, 그 준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의 웃음

요즘 아이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까르르’ 웃는다.

그냥 우리 얼굴을 보고 웃는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잘하고 있어. 우리.’


육아휴직 1년. 아직 10개월이 남았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원칙이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킬 아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