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은 왠지 숙연해진 마음으로 옷을 최대한 단정하게 입었다. 그 이유는 오전에는 테오티우아칸을 둘러보고 오후는 과달루페 성모 발현지를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테오티우아칸 멕시코시티 북부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과달루페 성지는 멕시코시티 북쪽에 있어서 보통 여행자들이 많이 묶는 코스다. 낮은 덥지만 아침은 쌀쌀한 2월의 멕시코 시티 공기를 마시며 우버택시에 오른 뒤 북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작은 우버택시에서 허름한 거리를 바라보는 것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버스 터미널에서 테오티우아칸 버스를 예매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자주 있어서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버스 시트가 발로 밟아 놓은 것처럼 먼지로 누렇고 거의 벗겨져 있었다. 예전에 터키 이즈마르에서 현지인들이 타던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이 확 났다.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거다'라고 마음을 다 잡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열심히 달리며 도심을 벗어나면서 산 위에 자리잡은 어마어마한 빈민가들이 나타났다. 산동네에 가기위해 설치했다던 케이블카를 운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가 테오티우아칸에 도착하고, 우리는 가이드 호객을 물리치고 표를 끊었다. 저 멀리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테오티우아칸에는 3개의 피라미드와 2km의 거리가 있다. 첫번째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 Sol)는 세계에서 3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피라미드로 밑변 가로 225m, 세로 222m, 높이 65m의 크기를 자랑한다. 태양신에게 바친 신전으로 250여개의 계단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출입이 금지되었다. 압도적인 크기에 사진에 다 담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까마득한 시절에 이런 거대하고 웅장한 것들을 만들어 낸 조상들의 유적을 보면 내 나라가 아니어도 참 대단하다. 삼삼오오 자리잡은 노점 아저씨들은 재규어소리 피리를 연신 불어 댔다.
그 다음으로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달의 피라미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사이에 넓은 길은 죽은 자의 길(La Calle de los Muertos)이다. 이 문명을 발견한 후대의 아즈텍인 들이 건물이 무덤인 줄 알고 붙힌이름이다. 이 곳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만들어졌다는데, 그 시대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문명의 신비로움 안으로 직접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북쪽 끝인 달의 피라미드(Piramide de la Luna)에 도착하였다. 태양 피라미드보다 작은 규모지만 테오티우아칸의 주요 의례들이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여기는 일부 올라갈 수 있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이 매우 가팔라서 너도 나도 네발로 짚고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가보니 아래에 테오티우아칸 전체와 그 뒤로 너른 땅이 펼쳐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땅보다 더 넓은 하늘 아래 구름 하나 없이 거대한 태양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양의 기운을 제대로 받는 곳이 맞았다. 그 시절 고위관리 또는 제물이나 되어야 볼 풍경이겠다 싶어 오랜 시간 바라봤다. 대신 그늘도 없는 곳이라 해가 솟아오를수록 빠르게 더워져서 피라미드를 내려왔다. 달의 피라미드는 인간의 심장과 피를 바쳤던 제사의식이 주관됐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라미드만으로도 신기할 것 같은데 다른 건물들도 있었다. 달의 피라미드 앞에 있는 께쌀빠빠로뜰 궁전(Palacido de Quetzalpapalotil)에 들렀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의례를 관장하던 신이나 왕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나비와 새 무늬가 새겨진 프레스코화와 부조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피라미드인 남쪽 끝 케찰코아틀 신전(Templo de Quetzalcoatl)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곳은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잘 안 보이고, 1.5km정도 걸어가야 볼 수 있었다. 30분 정도 걸어서 세번째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시우다델라’(Ciudadela)라고 불리우는 사각형의 기단군을 올라가서 뒤편으로 가니 한변 약 65m 6층의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이 피라미드는 특별히 케찰코아틀과 틀라로크라고 하는 두 신의 석조가 번갈아 끼워져 있었다. 별다른 꾸밈이 없었던 두 피라미드와는 달리 조각이 있어서 색달랐다.
모든 구경을 마치고 멕시코시티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태양의 피라미드 쪽으로 걸았다. 먼 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2km 가까히 보존된 규모에 놀랐으나 점점 더워져서 체력적으로 힘들어졌다. 내 체력과 이곳의 기후로는 모든 유적을 품기는 힘들 것 같았다. 건조한 모래바람과 나무가 되어버린 대형 선인장을 보며 사라진 문명에 대해 생각했다. 피라미드에서 바쳐졌다는 수많은 인간 제물이 떠올랐다. 2천년을 살아남는 강력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는 여러 사람을 묶는 강력한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을 인간 제물이라는 공포정치로 해결한 걸까? 이 대륙에서는 신에게 사람을 바치고 사람을 먹기도 했다는데, 그 시절 인간은 어떤 존재였을까?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깨끗히 사라져 버린 문명의 중심 거리를 걷는 인간 앞에 거대한 피라미드는 말이 없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 북부터미널을 향해 달렸다. 더위를 식히며 잠을 자려는데, 기타를 든 아저씨가 타더니 갑자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버스 안의 악사인 것이다. 애절한 노래와 신나는 노래를 한곡씩 하시고 팁을 걷으러 다니셨다. 이렇게 생계가 가능한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신호 걸린 차 앞에서 물건 파는 사람, 저글링 하는 사람 등 거리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터미널에 가기 전에 과달루페 성지와 가까운 찻길에서 미리 내렸다. 2월이지만 한낮에는 더웠고, 차와 노점과 행인들로 거리는 정신이 없었다. 타코에 지쳐서 대신 빵과 음료수를 사서 성지 앞 길에서 먹었다. 노숙인 몇명이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식사를 마치고 과달루페 성지안으로 들어섰다. 과달루페 성지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중 하나로, 1531년 인디오 원주민이었던 성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신 곳이다.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마침 2시 정각이 되자 천사의 종소리 같은 소리가 울리더니 오토마타로 성모님 발현 인형극이 나왔다. 성모님 성우 목소리가 참 따뜻했다. 이어서 대성전으로 서둘러 갔다. 성전 입구에는 "내가 너의 어머니가 아니냐? (¿No estoy yo aquí, que soy tu madre?)" 하신 성모님의 말씀이 세겨져 있었다. 아까 들려온 따뜻한 목소리가 이 내용인 듯 했다.
신 대성당 (Basílica de Nuestra Señora de Guadalupe)의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니, 내부의 광대한 규모에 감동이 느껴졌다. 제대 정 가운데 십자가 아래에는 성모 발현의 증표인 겉옷의 원본 성화가 걸려 시선을 모았고, 양 옆으로 신자들이 성모에게 바치는 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침 미사가 시작되어서 참례하였다. 성모 발현지에서 미사라니 영광스러운 경험이었다. 미사룰 마치고, 신자들이 모두 원본 성화를 영접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이 성화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는 과학적 신비와 함께, 멕시코 선교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가톨릭 역사의 보물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나눠줄 성물을 몇가지 사고 밖으로 나왔다.
신대성당 바로 옆에는 구 대성당 (Templo Expiatorio a Cristo Rey)이 있다. 고풍스러운 바로크 양식 건물로, 1709년에 완공되었으나 지반 침하로 건물이 기울어져 한때 폐쇄되었다가 복원되었다. 현재는 성체 조배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많이 기울어진 모습인데,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부의 장식이나 성화는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고요한 가운데 성체를 바라보며 기도하기 좋아보였다.
성당을 나와 광장 뒤 쪽의 테페야크 언덕 (Cerro del Tepeyac)을 올랐다. 계단을 오를 때 마다 멕시코시티가 내려다 보였다. 다 올라가니 산상 성당 (Capilla del Cerrito)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성모님이 후안 디에고에게 처음 나타나셨던 장소다. 작고 아담하며 성모와 예수 성화로 가득한 이 곳에서 묵주기도 1단을 바쳤다. 무릎을 꿇고 존경을 나타내는 이 곳 사람들처럼 나도 무릎을 꿇고 성모님의 눈을 바라보며 기도를 바쳤다. 오전에 테오티우아칸이 사라진 과거라면 과달루페의 성모님은 지금의 멕시코인들을 감싸 안아주는 존재로서 살아계신 것 같았다. 언덕을 내려와 우물 성당 (Capilla del Pocito)에 들렀다. 언덕 아래쪽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타일 장식의 성당이었다. 성모님이 나타나셨을 때 샘솟았다는 기적의 우물이 있었다. 아프고 힘든 인생에서 기댈 곳이 있다는 만으로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나는 이 곳에서 아픈 가족을 떠올리며 쾌유를 빌었다.
테오티우아칸 신전에서 과달루페 어머니의 품까지 멕시코시티의 하루는 다이나믹했다. 2025년의 하루였지만 고대와 중세를 걷고, 현실과 영혼의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 지금까지 멕시코시티를 둘러보면서 필리핀이 많이 생각났다. 거리나 사람들이 필리핀에서 본 듯한 인상을 받았다. 둘 다 자기 나라만의 스타일이 강한 나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성모님꼐 꽃과 사랑을 바치는 모습을 보았고, 성모님은 가난한 인디오에게 말을 걸었다. 언뜻 질서가 없는 듯 하지만 그 안에 강인한 역사도 천주교라는 종교적 방패막도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종교적 관념이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드러나는 이 땅.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