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멕시코시티를 둘러보는 날이다. 남편은 소파베드 잠자리가 불편한 지 매일 5시에 눈이 떠진다고 한다. 그런 남편 덕분에 일찍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식사는 계란 프라이, 빵, 망고를 먹었다. 망고가 크지는 않은데 아주 달아서 아들이 잘 먹었다. 어제 따뜻한 날씨를 경험해서 오늘은 아주 가벼운 옷으로 골랐다. 남편은 반바지까지 입었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길거리 노점과 출근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점점 활기를 띠었다. 시청(Alcaldía Cuauhtémoc) 근처에서는 천주교 행사로 타말과 아톨레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타말은 옥수수 반죽에 고기나 치즈 같은 속을 넣어 옥수수 껍질이나 바나나 잎에 싸서 쪄낸 멕시코의 전통 음식이다. 마야와 아즈텍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음식이라고 한다. 함께 마신 아톨레는 옥수수를 베이스로 한 따뜻하고 걸쭉한 음료로, 퍽퍽할 수 있는 타말을 부드럽게 넘겨준다. 인파에 뒤섞여서 우리도 얼떨결에 받아먹었는데, 맛이 순하고 입에 맞아서 아침식사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천주교신자로서 교회력을 공유하는 입장에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의미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광장과 혁명기념비(Monumento a la Revolución)가 나타났다. 높이 67m에 달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개선문 형태의 기념비 중 하나로 꼽힌다. 기념비를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 내부에는 판초 비야(Pancho Villa), 라사로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 등 멕시코 혁명의 주요 인물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거대한 위용과 넓고 잘 관리된 광장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길에 보았던 지저분한 거리와 노숙자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같은 도시 안에서 이렇게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되다니. 이곳은 ‘잘 관리된 멕시코’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바르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이름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마치 공상 과학 영화, 특히 '인터스텔라'의 5차원 서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2006년 멕시코 건축가 알베르토 칼라하(Alberto Kalach)가 이끄는 팀에 의해 탄생한 공공도서관으로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선반을 확장해 57만 5,000권의 책을 소장할 수 있는 독특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아침 일찍 가서 한산한 가운데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많이 봤지만 실제로 보니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도서관 안으로도 들어가 봤다. 선반으로 오르는 계단과 서가 바닥이 뚫려 있어서 아들이 많이 무서워했다. 3층으로 올라가 사진을 다시 찍었다. 수많은 책 속에 파묻힌 기분이었다. 서가마다 십진분류번호가 크게 적혔다. 모두 스페인어 책이라 읽을 수 있는 책은 없겠지만 세상의 다양한 지식을 담은 책이 이렇게 경이로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게 의미 있었다. 독서를 장려하기 참 좋은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리발디 광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유럽에서 본 듯한 건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리고 곧이어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이 모습을 보였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미술관인 듯했다. 번쩍거리는 대리석 겉모습이 고급스러웠다. 내부도 아르데코 양식으로 아름다웠다. 표를 예매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2층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회화를 보고 3층을 가니 화려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벽을 가득 매운 벽화와 화려한 색감이 압도적이었다. 제일 유명한 작품인 디에고 리베라의 <우주의 주인이 된 인간(Man at the Crossroads)>앞에 섰다. 제미나이에게 설명을 요청해서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을 보니 초5 아들도 흥미로워했다. 부분마다 섬세한 묘사와 스토리가 살아있는 백과사전 같은 그림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캔버스와 달리 벽에 그린 그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바로 옆에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의 <신독재에서 자유로>가 있었다. 강한 색감과 역동적인 표현으로 인해 강한 감정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멕시코의 거리를 걸으면 이렇게 큰 벽화가 정말 많은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점심으로 근처 멕시코 식당에 갔다. 번역기가 잘 안돼서 주문이 어려웠다. 그래서 옆에 있는 토핑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주문했다. 타코 3종류, 퀘사디아, 망고주스를 먹었다. 또르띠야가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나서 맛있길래 주방을 보니 직접 손으로 빚어서 굽는 것 같았다. 남편은 오르차다를 여러 번 먹더니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면서 신기해했다. 디저트로 근처 추로스 가게에 가서 추로스와 커피, 핫초코를 마셨다. 예전에 스페인 여행 갈 때 추로스를 자주 먹었는데, 여기도 스페인 문화가 남아서 그런지 추로스 가게가 있는 것 같았다. 아들과 나는 추로스를 좋아해서 정통 추로스가 그리웠는데, 멕시코에서 마침 만나 맛있게 먹었다.
사람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골목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갔는데 소칼로 광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러 로드샵과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이동하는 이곳은 꼭 명동 같았다. 다양한 가게와 사람들과 호객꾼으로 가득한 골목 끝에 소칼로 광장이 나타났다. 소칼로 광장(Plaza de la Constitución)은
소칼로 광장은 듣던 대로 웅장하게 넓었다. 거대한 멕시코 깃발이 휘날리고 선인장을 모티브로 한 예술 전시가 있었다. 그 뒤로 고풍스러운 유럽풍 건물들이 거리가 얼마나 먼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흐릿하게 휘감아 펼쳐져 있었다.
광장 옆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la Ciudad de México)에 들어갔다. 남미 최대 규모라고 불릴 만큼 크고 웅장한 성당이었다. 성전과 제단의 성물들은 매우 정교하고 다양했다. 소칼로 광장의 복작거리고 정신없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경건하고 엄숙한 공기가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 서 있으니 묵주기도가 절로 떠올랐다.
대통령궁을 보려고 했으나 행사로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옆에 있는 세계사박물관을 둘러봤다. 하지만 이때쯤 되니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노점이 너무 많았고 다양한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의 소음과 호객하는 소리, 향 피우는 냄새 등 너무 정신없고 복잡하기로 혼을 쏙 빼앗겼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지나칠 뻔했던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를 만났다. 이는 '거대한 신전'이라는 뜻으로, 고대 아즈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심장부였다. 남편이 원래는 호수 위에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였는데,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와 허물고 그 돌로 바로 옆의 대성당을 지었다고 알려줬다. 내가 감동받은 대성당이 원주민 입장에서는 치욕의 상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숙소 근처 식당에서 타코를 먹었다. 벌써 삼연 속 타코라서 조금 식상한 감도 들었지만, 각 타코마다 소소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또띠야를 5장씩 줘서 쌈 싸 먹듯이 조합을 달리해서 먹을 수 있었다. 여기는 소스가 특히 맛있었는데, 토마토, 양파, 고수, 고추를 다져서 만든 새콤하고 매콤한 소스가 기억에 남는다. 알싸한 맛이 먹을수록 점점 매웠지만 은은한 매운맛이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여행책에서 본 노빨이라는 선인장 볶음도 시도했다. 선인장을 썰어서 볶았는데, 생긴 것은 녹색 큐브 같은데 밍밍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났다. 2만 6천 보라는 기록을 남기고 피곤해서 일찍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