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2200미터에서 숨을 고르다

by 꽃정원

오늘은 마이애미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이동하는 날이다. 어제 미리 예약해 둔 우버는 출발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사 배정이 되지 않아 잠시 마음을 졸이게 했다. 결국 막판에 기사가 정해졌고, 우리는 무사히 공항으로 향했다. 우버는 이제 자유여행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거의 느끼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숙소를 정리하기 위해서 남은 음료수와 빵을 모두 먹었다. 쓰레기 봉투도 모아놓고 비앤비 주인에게 나간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주인은 우리가 있던 동안 날씨가 안 좋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얼굴도 못 보았지만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집 열쇠를 테이블에 올려 두고 나왔다.

머이애미 숙소 본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중국계 우버 기사님 덕분에 안전하게 공항에 도착했다. 마이애미 국제공항(Miami International Airport)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중심업무지구에서 북서쪽으로 약 13km 떨어진 국제공항으로, 미국과 남미를 연결하는 거점 공항이다. 이번 여행에서 아메리칸항공을 벌써 세 번째 이용하다 보니 절차가 제법 익숙해졌다. 무인 기계로 체크인을 하고 짐 태그 스티커를 받아 수하물을 부친 뒤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 탐지견을 지나 짐 스캔을 마치고 나오니 바로 면세점이 보였다. 입국 때와 달리 출국은 비교적 수월했다.


댈러스 공항처럼 이곳도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천공항과는 달리 도착객과 출발객이 한 공간에서 뒤섞이는 구조라 더 분주하게 느껴졌다. D터미널은 아메리칸항공 전용 터미널로, 국내선과 남미행 국제선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출발까지 두 시간이 남아 공항을 한 바퀴 돌았다. 쿠바 커피 브랜드 매장에서 커피와 쿠바 샌드위치를 먹고, 아들은 레고 매장을 구경했다. 탑승 시간이 되어 게이트로 가서 마지막 9그룹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붐비는 마이애미 공항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비행기는 미국인과 멕시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 어떤 이유로 이 도시에 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항공사 페이지에 접속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다녀온 뒤로 ‘유니버설 앓이’를 하고 있어 <미니언즈>, <슈퍼 마리오>, <트랜스포머>까지 관련 영화를 다시 보고 있었다. 승무원들이 나눠 준 쿠키와 콜라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흘렀고, 창밖으로 멕시코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보다 높이 솟은 산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 책에서 읽은 대로 멕시코시티는 해발 약 22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구름과 더 가까운 도시라면 풍경도 다르게 보일까 싶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름 위로 솟은 멕시코 산


비행기는 흔들리며 무사히 착륙했다. 휴대폰 이심이 멕시코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전파는 이미 넘어왔고, 이제 사람이 국경을 넘어갈 차례였다.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Mexico City International Airport)은 멕시코시티의 대표적인 국제공항으로 도심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지만, 오래된 시설과 진행 중인 공사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입국 심사대는 예상과 달리 고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안내 데스크처럼 보였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를 간단히 묻고는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디지털화된 시대라 도장을 받는 일이 드문데, 오랜만에 도장을 보니 미국을 벗어나 새로운 나라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짐을 찾은 뒤 숙소까지는 우버를 이용하기로 했다. 픽업 장소가 지정되어 있어 표지판을 꼼꼼히 읽어야 했다. 기사님을 만나 처음 들어보는 BYD라는 중국 자동차 회사의 경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멕시코시티의 따뜻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길가에는 알로에와 선인장이 보였고, 드문드문 자카란다 나무도 보랏빛 꽃도 피어 있었다. 겨울에도 피어 있는 열대의 꽃들이 반가웠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경비원이 우리를 맞이하며 근처 식당을 추천해 주었다. 이번 여행 동안 숙소 문제로 스트레스를 꽤 받았기에 마지막 숙소는 괜찮기를 기대했다. 방을 둘러보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더 깐깐해진 건지, 물가가 오른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유난히 마음에 쏙 드는 숙소를 만나지 못했다. 다음 여행에는 숙소 예산을 조금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이상 머무는 장기 여행에서는 숙소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면 피로가 빠르게 쌓이기 때문이다.


오후 4시가 넘어 오늘의 유일한 일정인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구글 지도에서 도서관 주소를 복사해 우버 목적지로 입력했는데, 도착한 곳은 전혀 다른 지하철역이었다. 정보 오류인지, 주소 체계의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스페인어도 모르고 현지 주소 체계도 익숙하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10년 넘게 신뢰해 온 구글 지도가 이번 여행에서 두 번이나 우리를 곤란하게 했다. 힘이 빠진 나는 전의를 상실했고, 대신 남편과 아들이 지하철을 타자며 앞장섰다. 남편의 특기는 번역기와 질문하기다. 현지인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못했기에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번역이 완료될 때까지의 인내만 견디면 충분히 유용했다. 한 정거장을 지나쳐 다시 돌아오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도착했지만, 하필 오늘은 행사로 휴관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거친 느낌의 멕시코시티 지하철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숙소 직원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향했다. 타코, 포솔레, 엔칠라다 등 우리가 아는 멕시코 요리를 주문했다. 먼저 튀긴 또르띠야와 라임이 기본 반찬처럼 나왔고, 이어서 주문한 메뉴가 차례로 나왔다. 돼지머리 고기를 넣은 타코는 생각보다 느끼했고, 또르띠야에서 내용물이 자꾸 흘러 먹기가 쉽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맛은 평이하게 느껴졌다.


멕시코시티 첫 식사

숙소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보았다. 미국에서 자주 보았던 월마트가 이곳에도 있었다. 과일 코너에는 빨갛다 못해 검게 보이는 사과와 망고, 멜론이 진열되어 있었고, 파인애플과 아보카도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색감이 유난히 선명했다.

멕시코시티 월마트 과일 코너


아들은 도착 후부터 약한 고산병 증세를 보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걷다가 노래를 부르니 숨이 더 찬다고 했다. 이제는 커버린 아들을 업어줄 수는 없었지만, 옆에서 함께 심호흡을 하며 증상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나 역시 공항에서는 약간 울렁거림을 느꼈고, 지금도 숨이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 있다. 반면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숙소에서 깊게 자지 못한 데다 고산지대의 영향까지 겹치니 머리가 아프고 빨리 눕고 싶었다. 낮에는 반팔을 입을 만큼 더웠지만 해가 지자 기온이 뚝 떨어져 제법 쌀쌀했다.


오늘 하루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그 어긋남 속에서 미국과는 다른 질감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음을 느꼈다. 익숙했던 영어와 시스템에서 벗어나 이해할 수 없는 알파벳의 조합과 훈훈한 공기를 마주한 첫날.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나라의 리듬에 천천히 적응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