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이애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마침 주일이라 미사를 드리고 마이애미 비치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으로 그제 사 둔 밥과 달걀을 먹었다. 찰밥처럼 보이지만 향신료와 고추를 넣어 지은 붉은 밥이었다. 빵 대신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괜히 고맙게 느껴졌다. 배 속이 든든하게 채워졌다.
일요일이면 해외에 있어도 성당에 간다. 여행 중의 미사는 늘 묘하다. 여행하러 온 사람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 찾은 곳은 성요한 보스코 성당(St. John Bosco Catholic Church)였다. 리틀 하바나에 있는 성당이라 신자 대부분이 히스패닉이었다.
입구의 넓은 마당에는 내가 익숙했던 성당 풍경과는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앰프로 강렬한 라틴 리듬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작은 음식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축제처럼 활기찼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층고와 제대, 예수상이 자리한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겉모습은 어디서나 보아온 성당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미사는 스페인어로 진행되었다. 마이애미에 오면 영어 미사를 드리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언어였다.
영성체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평화의 인사 때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 우리가 해 오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번역기를 켜 보아도 알아듣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언어는 달라도 미사의 구조는 같았고, 말씀의 흐름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기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일주일 동안 이동하며 쌓였던 피로가 천천히 풀려나갔다. 그날의 미사는 이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마늘과 소고기, 고추를 샀다. 남편이 쿠바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 했지만 주말이라 고기 메뉴는 안 된다고 했다. 대신 달걀 치즈 햄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오리지널은 아니었지만 따뜻하게 만들어 준 음식이라 충분히 맛있었다.
오후에는 마이애미 비치(Miami Beach)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상상해왔던 CSI 마이애미에서 보던 마이애미를 보고 싶었다. 리틀 하바나에서의 며칠은 분명 흥미로웠다. 음악과 벽화, 낯선 언어 속에서 이 도시의 또 다른 뿌리를 만났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드라마 속에서 보던 마이애미의 얼굴도 확인하고 싶었다.
우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자 풍경이 서서히 달라졌다. 낮은 주택가 대신 높은 빌딩이 솟아 있었고, 명품 광고판이 번쩍였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맑은 바다와 인공 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지 섬(Dodge Island) 근처에는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항구는 마치 바다 위의 도시 같았다.
원래 이번 여행에는 크루즈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취소했다. 만약 계획대로였다면, 저 배들 중 하나에 몸을 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갑판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건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타지는 못했지만 괜찮았다. 거대한 산처럼 우뚝 선 크루즈선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장관이었다.
택시는 교통체증을 뚫고 사우스 포인트 파크(South Pointe Park)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불던 칼바람이 여전히 매서웠다. 단단히 껴입고 왔는데도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눈앞에는 드넓은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대서양이 펼쳐졌다. 바람 때문에 오래 서 있기도 힘들었지만, 멀리서는 바디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아들은 물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겨울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대신 물빛이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유리알처럼 맑았다. 낯선 대서양이라 더 그렇게 보였는지, 문득 예전에 갔던 하와이 바다가 떠올랐다. 다른 바다인데, 비슷한 푸르름이 있었다.
바람을 피해 우리는 루무스 파크(Lummus Park)쪽으로 걸었다. 비치발리볼 코트와 야외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날씨가 더 따뜻했다면 훨씬 붐볐을 것이다. 우리는 잠시 운동기구를 만지작거리며 몸을 녹였다. 여행지에서도 결국 일상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섬 반대편으로 넘어가며 홀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에 들렀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와인 코너는 유난히 넓었다. 사러 간 건 아니었지만, 잘 정돈된 진열대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결국 아이쇼핑만 하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찬 바람을 오래 맞은 뒤라 따뜻한 커피가 간절했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카페에 앉았다. 늘 이동 중이었고, 가게는 일찍 닫았고, 여유는 없었다. 마이애미 비치로 넘어오니 영어가 더 많이 들리고, 분위기도 달라졌다. 나는 미국에 왔으니 이런 장면도 느껴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걸 확인하러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우버를 타고 리틀 하바나 숙소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스타 아일랜드(Star Island)이 보였다. 비스케인 만 위의 인공 섬으로 유명 인사들의 저택이 모여 있는 곳이다. 왼쪽에는 거대한 크루즈선이 줄지어 서 있고, 오른쪽에는 담장 높은 고급 주택이 이어졌다.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데도, 삶의 결은 전혀 달라 보였다. 다리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도시의 단면을 본 느낌이었다.
이로써 공식적인 미국 남부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멕시코시티로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빨래였다. 숙소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아들은 숙소를 지키고, 나와 남편이 빨랫감을 들고 동네 빨래방으로 향했다. 세제를 사고, 10달러를 동전으로 바꿔 세탁기를 돌렸다. 25분 후, 다시 건조기로 옮겼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현실적이었다. 낯선 동네의 빨래방. 주변에서는 빠른 스페인어가 오갔다.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손짓과 표정으로 필요한 말을 대신했다. 커다란 세탁기 앞에서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며 서 있는 동양인 부부. 그게 그날 밤의 우리 모습이었다. 화려한 해변도, 거대한 크루즈선도 아닌, 돌아가기 전의 빨래방에서 우리는 다시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인이 되었다.
해가 진 리틀 하바나는 라이브바의 음악과 네온사인으로 반짝였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거리만 걸어도 충분히 흥겨웠다. 관광객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이 동네는 누군가의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남편은 저녁을 준비하고 나는 빨래를 갰다. 마지막 만찬은 감바스 파스타와 부챗살 스테이크. 처음 산 마늘은 피클이었고, 다시 사 온 생마늘은 시큼했다. 한국에서 먹던 알싸한 마늘맛과는 달랐다. 생긴 건 비슷한데 맛은 다르다. 그제야 생각했다. 처음 잘못 샀던 마늘피클도, 어쩌면 그저 이 땅의 마늘 맛이었을 뿐이라는 걸.
낯선 도시를 이해한다는 건, 이런 사소한 차이를 하나씩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번 미국 남부 여행이 100% 만족스럽지 않았던 건 돈과 시간의 한계 때문이지만, 그 한계를 넘어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여행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더 중요한 포인트였다. 환상 속에 현실이 있을 수 있고, 현실 속에 환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삶의 한 방식일 것이다. 이번 미국 여행을 마무리하며, 이것이 낯선 땅에서 겪은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남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