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에버글레이즈에 가기 위해서였다. 우버 세이버를 불러두고 늦을까 봐 괜히 마음이 바빴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우버 기사들은 대부분 히스패닉이었고, 대체로 말수가 적었다. 스몰톡이 리뷰에 영향을 주는지, 아니면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대개는 조용히 목적지까지 달렸다.
그런데 오늘 만난 기사님은 달랐다. 남편이 창밖 풍경을 찍고 있자 창문을 살짝 내려주었다. 그리고 메시가 뛰고 있다는 경기장 이야기를 꺼냈다. 푸근한 웃음소리가 차 안에 오래 남았다. 이번에는 예전 댈러스에서처럼 렌터카 사무실을 헤매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공항 렌털 센터로 바로 갔고, 미리 예약해 둔 덕분에 현장 결제보다 훨씬 저렴했다. 차도 한 번에 받았다. 지난번 고생이 컸던 탓인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과정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무료도로를 타기 위해 외곽으로 빠져 직선 도로를 달렸다. 길가에는 열대식물 농원들이 이어졌다. 키가 다른 야자나무와 알로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화분 가게, 흙 가게, 대형 농장들이 간간이 보였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데도 시골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풍경이 유난히 흥미로웠다.
40분쯤 달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Everglades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풀의 강’이라 불리는 이곳은 북아메리카 최대의 아열대 습지다. 민물 습지와 맹그로브 숲, 나무섬이 이어지고 수많은 조류와 파충류, 포유류가 공존한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크게 로열 팜, 플라밍고, 걸프코스트, 샤크밸리 등 4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이곳에서 캠핑, 낚시, 보트, 하이킹, 자전거, 카누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초입의 방문자 센터에 들러 10시 30분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입장료 앞에서 멈춰 섰다. 남편이 “올해 요금이 많이 올랐대”라고 말했다. 검색해 보니 기본 차량 요금 35달러 외에 외국인 성인에게 1인당 100달러를 추가로 받는다는 내용이 나왔다. 차를 잠시 돌려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자연은 그대로일 텐데, 가격표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순간,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국경을 넘는 일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비자 발급 비용이 오르기 전에 서둘러 준비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잘 피해 간 것 같았는데, 여기서는 고스란히 마주 서야 했다.
정책은 숫자로 설명되지만, 여행자는 감정으로 체감한다. 그날의 에버글레이즈는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멀리서 시간을 들여 찾아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앞서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가격은 환영의 표시라기보다 조용한 경계처럼 느껴졌다. 들어와도 좋지만, 그만큼의 값을 치르라는 것 같아 잠시 황당했고, 서운했다.
사실 오늘은 키웨스트 최남단까지 드라이브를 갈까 고민하다가 이동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이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금액이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국립공원 내 플라밍고 포인트 3시 보트 투어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결국 입장했다. 직원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올해부터 바뀐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16세 이상만 해당이라 우리 둘만 추가 요금을 냈다. 선불 충전 카드 잔액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먼저 로열 팜의 아힝가 트레일을 걸었다. 800미터 남짓한 코스로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겨울은 먹이가 풍부한 ‘뷔페 시즌’이라고 했다. 초입부터 통통한 앨리게이터가 몸을 말리며 누워 있었다. 미동도 없었다. 아힝가라는 새는 먹이를 잡기 위해 15분 이상 잠수할 수 있다고 했다. 대포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스쳤다. 우리는 200달러를 내고 이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악어도, 새도, 거북이도 그런 계산과는 무관했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자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점심은 차 안에서 어제 먹던 아사도 타코를 다시 꺼냈다. 또띠야 위에 양파와 고수를 얹고 고기를 올려 소스를 뿌렸다. 국립공원 안에는 식당이 없다고 해서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이었다. 단출했지만 이상하게도 만족스러웠다.
이후 플라밍고 지역으로 이동해 보트 투어를 했다. ‘물’이 이 공원의 핵심이라는 설명을 듣고 꼭 타보고 싶었다. 맹그로브 숲 사이를 가르며 배가 나아갔다. 염도가 높은 물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 가지 맹그로브의 생존 전략을 들었다. 운 좋게 어린 크로커다일 한 마리도 보았다. 넓은 만에 이르자 바다가 펼쳐진 듯 시야가 탁 트였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추웠지만, 거대한 에버글레이즈의 안쪽을 잠시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숲길이 좋다. 끝없이 이어지는 식물의 결을 보는 일이 좋다. 초록의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좋다. 남편은 그랜드 캐년이나 거대한 협곡처럼 압도적인 풍경을 더 좋아한다.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우리가 보는 높이와 방향은 조금 다르다.
해가 지는 길을 따라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왔다. 주유소에서 카드가 계속 거절되어 안으로 들어가 먼저 계산을 하고 기름을 넣었다. 갑자기 몰아친 바람에 몸이 떨렸다. 하루가 길었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 아홉 시가 넘어 닭곰탕과 토마토 파스타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하루 종일 자연 속을 헤맨 탐험가들처럼,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평화롭고 고요한 거대한 자연을 만나는 일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그 자연에 닿기 위해 높은 금액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존을 위한 비용이라는 설명은 이해하지만,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아질 때 자연은 누구의 것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 앞에서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의 에버글레이즈는 경이로움과 서운함이 함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