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마이애미는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짐을 쌌다. 올랜도를 떠나기 위해 예약해둔 우버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터미널에는 총을 든 경찰들이 서 있었다. 건물은 낡았고,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루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변에는 노숙인들이 보였고, 술에 취한 듯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딘가 불안하고 거친 분위기가 느껴져 자연스레 긴장이 되었다. 어찌 됐든 시간이 되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안에는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 사람들이 많았고, 디즈니랜드 모자와 배지를 단 가족들도 보였다. 버스가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금세 잠이 들었다. 마이애미까지는 네 시간 거리라 중간에 한 번쯤 휴게소에 설 줄 알았는데, 기사님은 쉬지 않고 쭉 달렸다. 자다가 눈을 떠보니 마이애미 북쪽의 포트로더데일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시간만 넘어도 한 번쯤 쉬어 가는데, 당연히 중간 정차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멈춤 없이 이어지는 네 시간의 이동을 보며, 이곳 사람들의 거리 감각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바라본 마이애미의 하늘은 흐렸고, 독수리처럼 보이는 새들이 여러 마리 날고 있었다. 도로에는 유난히 차가 많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시간이 더 지체될 것 같아 공항 근처에서 미리 내려 숙소로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올랜도보다 더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이제는 옷을 더 얇게 입어도 되겠다 싶었다. 우버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리틀 하바나 근처의 가정집으로, 별채를 에어비앤비로 내놓은 곳이었다. 요즘은 기업처럼 운영되는 숙소가 많은데, 오랜만에 개인이 직접 관리하는 집이었다. 주인은 메시지로 근처에 가볼 만한 식당 리스트를 보내주었다. 에어비앤비가 막 시작되던 초창기 분위기가 떠올랐다. 그때는 주인을 한 번쯤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다. 호텔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은 아니었지만, 삼일 동안 머물 공간이니 정을 붙여보기로 했다. 앞으로 먹을 음식 장을 보러 밖으로 나섰다. 가는 길에 먼저 리틀 하바나 거리를 걸어보았다.
리틀 하바나는 라틴 아메리카 미술관과 쿠바 레스토랑이 밀집한 이민자 지구다.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이국적인 분위기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쿠바식 레스토랑과 식료품점, 잡화점, 시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거리에는 라틴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대부분 라이브 연주였다. 노래는 잘 몰라도 리듬이 시작되면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수탉 모형과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다른 여행자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여행다운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쭉 걷다 보니 쿠바 메모리얼 파크가 나왔다. 이 공원은 쿠바 혁명 당시 자유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입구에는 기념 횃불이 세워져 있다. 곳곳에는 쿠바와 쿠바계 미국인의 상징적인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리틀 하바나 거리 바닥에도 쿠바계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는 인물은 없었지만, 이국적이면서도 활기가 느껴지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쿠바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과 음악, 색감 덕분에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문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근처 마트에 들렀다. 내가 흔히 아는 미국 브랜드 마트가 아니였다. 입구에서부터 홈메이드 또띠야와 아사도, 따뜻한 밥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사과와 자두, 양파와 고수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신선식품 종류가 다양했고, 아티초크와 선인장 줄기 같은 낯선 식재료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많이 들렸다. 이주민들이 주로 찾는 마트였다. 남미 식재료가 특히 많았고, 남미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는 말타 음료도 여섯 개 들이로 하나 담았다. 오랜만에 샌드위치나 햄버거 같은 가공식품이 아닌, ‘음식다운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괜히 들떴다. 마트를 둘러보는 시간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잠시 여행자가 아니라 이 동네에 사는 생활자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아사도 타코를 만들어 먹었다. 맛은 좋았지만 또띠야가 글루텐프리라 쉽게 부서져 조금 어색했다. 밥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찰밥처럼 보였는데, 향신료와 고추를 넣어 지은 매콤한 밥이었다. 그래도 가공식품에서 벗어난 식사라 더 고맙게 느껴졌다. 올랜도에서 마이애미로 넘어온 날이었다. 또 하나의 챕터가 조용히 열리는 순간 같았다.
사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마이애미를 가장 기대했다. 그런데 첫날 마주한 풍경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휴양지의 푸른 바다와 세련된 도시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리틀 하바나에서 느낀 분위기는 훨씬 남미에 가까웠다. 아직은 마이애미를 제대로 만난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다른 얼굴을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