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영화 속으로 던져진 하루

by 꽃정원

오늘은 유니버설 올랜도 리조트(Universal Orlando Resort)에 가는 날이다. 이곳은 1990년에 개장한 전 세계 최초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테마파크다. 기존의 스튜디오 투어 형식이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의 콘셉트를 더욱 확장해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로 재탄생한 공간이라고 한다. 디즈니랜드를 이미 다녀온 터라, 이번에는 유니버설 리조트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리조트에는 총 네 개의 파크가 있다. 그중 우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플로리다(Universal Studios Florida)를 선택했다. 몇 달 전부터 유튜브 방문 영상을 찾아보고, 공식 어플을 내려받아 티켓도 미리 구매해두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가장 기다리던 날이다. 아들은 아침에도 테마파크 영상을 보며 나름의 준비를 이어갔다. 남편은 냄비에 빵을 구워 토스트를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힘찬 발걸음으로 파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들은 신나고 기대가 되는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50분쯤 걸어가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가족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인파가 한 방향으로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짐 검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상점가가 펼쳐졌다. 개장까지 한 시간이 남아 설레는 마음으로 기념품을 둘러보았다. 닌텐도를 좋아하는 아들은 닌텐도 숍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Universal’이라고 적힌 지구본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비눗방울이 흩날리고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아, 기분이 자연스럽게 밝아졌다. 드디어 입장이다.


이후 우리는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연달아 탔다. 로봇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트랜스포머 라이드를 선택했다.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대기 공간부터 몰입감이 상당했다. 3D 안경을 끼고 자리에 앉자마자 스크린과 좌석의 움직임이 동시에 몰아쳤다. 차량이 급격히 회전하고 튕겨 오를 때마다 절로 비명이 나왔다. 쉼 없이 이어지는 영상과 움직임에,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라이드를 마치고 나오자 아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말했다. “엄마, 이거 한 번 더 타고 싶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위저딩 월드 오브 해리포터 – 다이애건 앨리였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이애건 앨리와 런던을 테마로 조성된 구역으로, 유니버설 파크 방문객 수를 크게 끌어올린 핵심 공간이라고 한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마법으로 가득 찬 세계가 펼쳐졌다. 중앙에는 상점과 음식점, 그리고 라이드가 모여 있었다.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구경만 해도 소설과 영화 속 장면이 정교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구석에는 녹턴 앨리로 이어지는 길도 있었는데, 어둑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이미 대기 줄이 길어지고 있어 서둘러 해리포터 라이드를 탔다. 영화 1편에서 보았던 그린고트 은행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듯한 착시 효과와 함께, 해리포터의 마법으로 위기를 넘기는 서사를 직접 체험했다. 디즈니와는 또 다른 유니버설만의 스타일이 분명히 느껴졌다. 다만 실제 롤러코스터보다 이런 영상 중심의 라이드가 나에게는 더 피로하게 다가왔다.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몸은 의자에 고정된 채 강하게 흔들리니 멀미가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남편과 아들은 여전히 신이 나 있었지만, 나는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는 걸 느꼈다. 밖으로 나와 유명한 버터비어를 마셨고, 개구리 초콜릿과 젤리빈도 구입했다. 음식과 상점, 거리의 디테일까지 해리포터 세계관이 얼마나 깊고 넓게 확장되어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다이애건 앨리

다음으로 향한 곳은 스프링필드: 홈 오브 더 심슨즈(Springfield: Home of the Simpsons)였다. 어릴 적 자주 보던 만화라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노란 간판과 과장된 색감의 건물들이 만화 속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크러스티 버거와 모의 태번 같은 익숙한 장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구역은 다른 곳보다 한층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였다. 사람들 표정도 조금 더 느슨해 보였다. 분홍 도넛을 사 먹고, 점심으로 간단히 피자도 먹었다.


심슨 라이드는 거대한 돔 스크린 안에서 진행되는 시뮬레이터였다. 트랜스포머보다는 덜 격렬했지만 여전히 화면과 움직임이 밀착된 구조였다. 웃기고 정신없고, 동시에 조금 어지러웠다. 아들은 깔깔 웃으며 즐겼고, 나는 ‘이제는 잠시 쉬어야겠다’는 신호를 몸으로 받았다. 유니버설은 확실히 체험의 밀도가 높은 파크였다. 디즈니가 동화 속을 걷는 느낌이라면, 유니버설은 영화 속으로 던져지는 느낌에 가깝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요구한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였고, 나에게는 체력 고갈을 실감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여섯 번째 라이드는 포기하고 혼자 밖에서 쉬었다. 호수를 바라보며 햇볕을 쬐니 멍했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졌다.

크러스티 랜드


반면 아들은 하루 종일 반짝이는 얼굴로 모든 것을 즐기며 사진도 많이 찍었다. “오늘 10시간이 꼭 10분 같았어.” 그렇게 말하며 완전히 몰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의 피로는 충분히 감당할 만한 것이 되었다. 여행은 결국 어디를 갔느냐보다, 누가 얼마나 행복했느냐로 기억에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아들이고, 우리는 가족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남편은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쯤 되었을 때 올랜도에 가서 놀이공원을 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몇 년 전부터 계산하듯 계획을 세워두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올랜도를 내가 갈 일이 있을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렇게 실제로 와서, 눈을 반짝이며 열광하는 아들을 보니 남편의 치밀한 계획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그의 계산이 아주 제대로 통했다.


오후 4시쯤부터는 가장 재미있었던 라이드를 다시 탔다. 폐장 시간인 7시가 가까워지자 아들은 자기 용돈으로 살 기념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호그와트 키링 하나를 선택했다. 폐장 시간이 되자 어마어마한 인파가 한꺼번에 빠져나오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우리도 택시를 불러 작고 낡은 숙소로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영화 속 세계에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현실의 힘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영원히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던 오늘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의 나는 아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아들은 이 환상을 온전히 믿고 즐길 만큼 자라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현실을 더 크게 실감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놀이기구가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높이로 같은 하루를 지나온 것은 아닐까.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하루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