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정원 Apr 07. 2023

죽어도 도심에 살으리랏다

단독주택 살아보니 #15

 단독 주택하면 주로 산과 논으로 둘러싸인 전원주택을 떠올리겠지만 우리 집은 지방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 내가 사는 도시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닌 지방도시인데 2007년에 신도심을 개발했고 각종 관공서와 주거단지를 구획하여 개발했는데, 게 중의 주택 단지가 현재 우리가 사는 마을이다. 작년에 집을 짓기 위해 우리 지역의 여러 주택 단지를 둘러보며 비교해 보았다. 첫 번째는 도시 외곽에서 약간 떨어진 전원마을이었다.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고, 바로 옆에 큰 호수가 있어서 공기가 참 맑았다. 하지만 근처에 가게도 별로 없고, 차를 타지 않으면 갈 만한 곳이 전무해 보였다. 은퇴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주로 집과 마당에서만 생활할 요량으로 지내는 곳인 것 같았다. 이사를 가면 불편하고 심심할 것 같아서 이 단지는 적합하지 않았다. 두 번째 주택단지는 도심 속에 있었다. 하지만 큰 산을 뒤에 끼고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형태의 마을이었다. 그 마을이 속한 동네가 오래되고 큰 장점이 없어서 여기도 제외되었다. 세 번째가 우리가 살게 된 마을인데, 도심에 있으면서도 각종 편의시설과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주변에 일 보러 오가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개방된 마을 구조라 마음에 들었다. 그곳의 땅을 알아보고 집을 지어 살게 되었다.


도심의 출근길과 퇴근길


이사를 오면서 집도 바뀌었지만 동네가 바뀐 것이 더 큰 변화였다. 전에 7년간 살았던 아파트는 도시의 외곽에 있었고, 동네가 크지 않았다. 교통이 좋아서 아파트도 새로 생기고 여러 상가가 늘긴 했지만 도시 외곽이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었다. 병원이나 은행은 기본적인 것만 있어서, 피부과를 가거나 새로운 병원을 가보려면 다른 동네로 찾아가야 했다. 얼마 걷다 보면 논이다 보니 또 동네 맛집 몇 군데 가는 것 말고는 동네를 구경하거나 돌아다니는 일도 별로 없었다. 자연히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차를 타고 멀리 나가서 구경하고 돌아오거나 차박을 하러 다니곤 했다. 하지만 도심지 동네로 이사 오고 나니, 조금만 걸어가면 사람들이 일 년 내내 바글바글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상가와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모습이 나왔다. 같은 도시에서 쭉 살고 있지만 동네를 옮기지 같은 도시가 맞는지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산책을 자주 하게 되었다.


도심 주택 생활의 장점을 꼽아보자면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을 그대로 가져가는 주거 환경인 것 같다. 그래서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한 우리 가족은 이사 오고 나서도 안팎으로 집안일을 몇 가지 더 해야 한다는 점 외에는 크게 불편한 점은 못 느끼고 있다. 조금 걸어가면 대형마트와 로컬푸드마트가 있어서 식재료를 필요할 때 간단하게 살 수도 있고, 주말에 몽땅 사 올 수도 있다. 이사오기 전에는 경비원도 없고, 낮에 집을 비우는 맞벌이라 택배를 어찌 받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무인택배함을 이용해서 택배를 받는 것도 가능하고, 반품하는 것도 가능해서 전혀 불편이 없었다. 아파트 살 때처럼 로켓 배송도 가능하고 다양한 택배도 쉽게 받을 수 있다.  


큰 일을 하는 우편함과 무인택배함


거기에 걸어가는 거리에 초등학교도 있고, 주변에 고등학교가 4개나 있어 초등학생 아들이 앞으로 학교 생활도 순탄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근처에 은행이나 병원도 다양해서 퇴근길에 잠깐 병원이나 은행에 들렀다 갈 수도 있다. 몸에 불편한 것이 있어도 병원이 멀면 안 가고 그냥 넘길 때도 있었는 데 병원에 가볍게 들를 수 있어서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봄에는 알러지성 결막염을 치료했고, 미뤄뒀던 레이저 제모도 드디어 받고 있다.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아들의 교정 치과도 부담 없이 갔다 올 수 있다. 저녁밥 먹고 다 치우면 괜히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바뀐 계절을 느껴보고, 좀 더 걸어서 도청 앞 도심 상가를 둘러보며 구경하는 이유 없는 동네 산책이 정말 많아졌다.


 어느 더운 여름날, 마당에 잡초를 뽑고 삽으로 흙도 일구고 반나절을 꼬박 밭 일을 했다. 긴 시간 육체 노동에 너무 지쳐서 힘들었는데, 남편이 수고했다고 외식을 하러 갔다. 그래서 온 가족이 도심 상가로 가서 매콤한 마라샹궈를 먹고 2차로 근처 맥주 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왁자지껄한 도시의 여름밤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니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낮에는 내가 시골 사람 같았는 데, 밤에는 완벽한 도시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독주택 살아보니 집도 집이지만 그 집이 어느 동네에 있느냐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도심주택에서 사는 것이 참 만족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택은 업그레이드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