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걷는 길 _1. 정반대 방향

by 찐빵

“왜 가야하는데!”

아빠와 늘 함께였는데 나와 단둘이 떠나야 한다니 지호의 이런 반응은 예상했던 터였다. 남편이 1년 중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기간이라서 우리는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 마침 나에게도 한숨 돌릴 여유가 간절했다. 나는 진심으로 캠핑을 좋아했다. 문제는 사춘기 초기 지호와 가야 하는 여행이라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간 지호는 내가 지금까지 키워 온 아이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놀랍게 변화하고 있었다. 부쩍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횟수가 늘어갔다. 귀에 이어폰을 끼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훌쩍 커버린 키처럼 멀어져버린 지호를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나와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건강염려증이 있는 내가 음식을 자꾸 자제시켜서? 빨리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다녀오면 재잘대던 지호 모습이 선한데 그 지호는 우리 집에 없다.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남들이 딸 하나 더 낳으라고 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 하나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딸들이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오, 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나이까. 말하기 좋아하는 내가 말할 수 없는 일은 슬픔과 외로움이 갑자기 몰려오는 일이었다. 지호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 마음을 못 잡고 있었다. 지호의 학교 가는 발걸음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지호도 엄마와 단둘이 떠나야 하는 캠핑이라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공식적으로 학교를 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나와 떠나는 3일간의 캠핑을 결정한 듯 했다.

나와 지호는 최근 일로 서먹한 상태였다. 쓰라린 마음으로 고향 근처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을 잡았다. 소나무 밑이라서 시원할 것 같았다. 수영도 마음껏 하고 쉬며 묵었던 마음까지도 훌훌 씻어버리고 싶었다. 기대와 함께 순간순간 잘하는 일인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모르는 어둠에서 한 발, 한 발 옮기는 기분이었다. 지호는 요즘 부쩍 늦게 들어올 때가 많았다. 나는 밤늦게 다니는 지호를 기다리며 온갖 상상의 나래 속에서 나와 남편을 못살게 굴었다. 핸드폰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옆에 있는 남편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순하디 순한 남편에게 권위 있는 아빠가 되어보라고 다그치다 지호의 핸드폰 위치 추적을 수시로 해보며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왜 도대체 연락을 안 받는 거야. 늦으면 연락이라도 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나쁜 놈.”

이런 순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바둥댔다. 그 바둥댐이 내 아이를 지켜줄 것처럼.

나중에 크면 잘하겠지.”

남편은 나와는 다른 평안함 속에 있었다. 나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목표물을 찾았다.

“여보가 그렇게 느긋하니까 얘가 이런 거라고. 나중에 내가 스트레스로 병 걸린 후에 잘하면 뭐해. 지금 잘하라고 해. 지금!!”

남편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전화를 계속해댔다. 11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금방 오겠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어, 그래, 조심히 와.”

내 감정들은 남편 앞에서는 남김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지호만 만나면 쏙 들어갔다. 최대한 고상한 엄마처럼 지호와 통화나 문자를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나름 아이를 대화로 키워왔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통화한 지 20분, 30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지호는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려지고 지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는 건 이상했다. 사고난 것은 아닐까, 무서운 형들을 만난 거면 어쩌지, 다친 걸까..온갖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여보 안 되겠어. 나 나갔다 올게.”

어느새 한 손에는 핸드폰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방향을 잡지 못해서 반대쪽으로 열심히 달리다가 점점 아들의 폰 위치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반대로 페달을 밟았다. 이때는 방향보다 아들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아들아, 엄마가 간다.’ 보이지 않는 끈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찬찬히 위치를 다시 보니 큰 도로 다이소 앞에서 아들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저 멀리 지호가 보였다. 웃고 있어 안심이다. ‘어라, 저기 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는 얘가 내 아들 맞는데 그 옆에 있는 머리 긴 여자아이는 누구지?’ 둘은 음료수를 마시며 서로 웃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라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때는 멈춰야 할까 2초 정도 고민했나. 잠시의 고민을 마치고 돌진하고 말았다. 칙! 자전거를 급히 세워놓고 학교생활부장 선생님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누구인지, 집은 어디인지,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빨리 집에 가라는 말로 그녀를 보냈다. 그 순간 준비 없이 너슬대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늘어진 티셔츠에 민망함이 올라왔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잠시 주문 외우듯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무언가에 지지 않으리라는 단호함으로 지호 쪽을 돌아봤다. 지호의 온화한 미소는 이글이글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어 있었다.

“너 나랑 이야기 좀 해.”

최대한 권위 있게 말했지만 지호에게 돌아온 말은 “내 엄마도 아니야.”였다. 지호는 그 한마디를 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길, 내가 갈 수 없는 길만 찾아가는 것 같았다. 나의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기가 차서 눈물이 올라오다 말고 “거기서!”를 내뱉었지만 주인 못 찾은 소리는 힘없이 사라졌다. 타고 온 자전거를 집으로 터벅터벅 끌고 오며 눈물을 삼켰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만 머리에 맴돌았다. 집에 와서 남편을 보자마자 울음보가 터졌다. 울먹이며 내지른 말들을 조용히 들어주던 남편은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느리게 말했다. 이 남자의 평온이 미우면서 신기했다. 한참을 쏟아냈을 때 남편이 옆에 와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 여자얘 예뻐?” 올라오던 슬픔이 쏙 들어갔다. 이놈의 남자들이란.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