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걷는 길_2. 서걱거림

by 찐빵

출발 전부터 지쳤다. 물건 하나, 하나를 담으며 '진짜 필요한 걸까?'를 수도 없이 물었다. 담다 보면 짐이 한없이 불어났고 짐의 무게가 늘어갈수록 피로감이 급히 몰려왔다. 그렇다고 담을 것을 안 담으면 꼭 탈이 났다. 수많은 물음 속에 선택된 적당한 짐. 그 짐을 다시 차 하나에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남편이 짐으로 퍼즐 맞추듯 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차 한가득 빵빵하게 채우고 지호와 단둘이 하는 첫 캠핑을 떠났다. 차 하나면 2박 3일이 살아진다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닐까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

“엄마, 음악 좀 꺼봐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지호는 음악 소리가 방해된다는 듯 찌푸렸다. 속을 달래며 음악 볼륨을 줄였다. 우리는 고요 속에 캠핑장을 향해 달렸다. 우리의 일상과 닮은 채로.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에 먹을 간식거리와 고기를 사기 위해 근처 마트에 들렀다. 나는 고기와 간단한 쌈 채소, 생수를 담았다. 지호는 당 수치를 올릴 것 같은 마시멜로, 암을 유발할 것 같은 붉은 소시지, 이 썩기 딱 좋은 탄산음료, 딱딱해서 치아에 좋지 않을 것 같은 브이콘, 불량스러움을 버무렸을 것 같은 거무스름한 문어발 모양 숏다리를 가지고 왔다. 이유식할 때 한우 2++만 먹였다. 아토피가 있는 지호를 위해 유기농 과자를 고집했다. 양가 가족력을 염려하며 안전한 둥지에서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지호의 몸집은 커져갔고 이제는 나의 둥지가 비좁아보였다. 지호는 날아오를 준비를 막 끝낸 것 같았다. 내가 입에 넣어주던 것 대신 자신만의 식량을 찾아 떠나려고 했다.

쓰린 마음을 붙들고 캠핑장에 도착했다. 돗자리 2개를 펴고 차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짐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나와 지호는 텐트 앞을 어디로 할 건지 먼저 정하고 폴대를 텐트와 연결해서 지지대를 세웠다. 한꺼번에 폴대를 조립해서 텐트에 찔러넣으면 텐트가 찢어질 수 있다. 살살 달래가면서 폴대를 밀어넣었다. 아빠 없이 텐트가 세워질까 싶었는데 지호는 아빠 등 너머로 꽤 많은 것을 배워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했는데도 집이 얼추 완성되었다. 텐트 안에 실내 텐트를 만들고 텐트 가장 높은 곳에 LED 충전식 전등도 걸었다. 자충 매트에 오래도록 막아놓은 공기구멍을 열어주고 새벽을 위해 전기매트를 침구 밑에 깔았다. 밖에는 캠핑 의자를 펴고 탁자를 조립했다. 조그만 전기 박스를 열어 4구짜리 전기릴선을 꽂아 선풍기부터 돌렸다. 선풍기 바람 하나에 행복해졌다. 짐을 하나씩 들어 자기 자리를 찾아주었다. 팔목이 시큰거려서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앞에 두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냥 차 안에 두고 써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지호가 오더니 말없이 조리대 옆에 갖다 놓았다. 그 모습이 낯설게 좋았다.

모든 것을 갈라놓을 것 같은 땡볕에 한 바가지 땀을 쏟아놓았을 때, 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다리 꼰 닭을 급히 압력밥솥에 넣어 끓였다. 칙칙폭폭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 후 김치와 함께 후다닥 점심으로 차려냈다. 지호는 한바탕 땀을 흘려서 배가 고픈지 닭뼈를 말끔하게 골라내며 복스럽게 먹었다. 밥을 먹으며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환해졌다. 모든 흔적을 소리도 없이 말갛게 닦아놓고 가는 파도가 좋았다. 어린 시절 수건을 앞에 둘러서 얼굴을 씻겨주던 엄마 손 같았다. 그 손이면 내 얼굴이 반들반들 빛이 났다. 저 멀리에서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땀에 절어버린 몸을 어서 담그고 싶었다. 지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샤워를 하고 싶다며 샤워장으로 갔다. 몇 년 전만 해도 바다 앞에서 까르륵대기 바빴던 우리였는데...비슷한 장소에 오면 그 변화가 더 크게 느껴져서 마음이 서늘했다. 한참을 씻고 오던 지호는 무엇 때문인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엄마, 씻었는데 발에 모래 다 들어와서 도착하니까 또 씻어야 되네.”

지호의 물기 묻은 신발은 고운 모래투성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왔다갔다 몇 번을 했다고 했다. 다 큰 것 같아도 아이같이 당황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호를 캠핑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사온 물로 발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주었다. 사용한 수건으로 탈탈 털어줬다. 발가락 사이, 사이, 발바닥까지 꼼꼼히 닦았다. 어느새 아빠보다도 커져버린 지호의 발을 자세히 만져보고 자세히 살펴봤다. 이 커다란 발을 나에게 맡긴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굳은 살이 자리잡은 곳도 있었다. 발에 물기가 묻어서 쉽지는 않았다. 이번 캠핑에서는 발매트를 챙겼어야 했다. 캠핑에 도착하면 한, 두 개는 꼭 빠뜨리고 온 것이 있어서 안타까워한다. 그러다가 그 부족함을 덮어주는 다른 것을 찾고는 신이 나곤 한다.

잘 털어준다고 털었는데 텐트 안에서 서걱거림이 느껴졌다. 지호와 나 사이의 알 수 없는 서걱거림과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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