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구름이 많아졌다. 관리사무소에서 사온 장작을 서둘러 넣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로 했다. 캠핑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TV를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유연석도 캠핑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설랬다. 그리고는 그가 가지고 있다는 무쇠 그리들 팬을 충동구매 했다. 처음 배달되어 온 그리들 팬을 보았을 때 그 크기에 움찔 놀랐다. 이 그리들팬은 어설픈 화력으로는 팬 가장자리까지 고기가 바삭하게 익지 않았다. 타다닥 타오르는 장작 위에 올렸놓았을 때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빛이 났다. 둘이 먹는데 좀 큰가 싶었지만 나는 캠핑만 가면 이 무쇠 그리들팬을 고집했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려주려는 듯이. 우리는 사온 고기에 송이버섯, 양파, 마늘을 올리고 소금, 후추를 뿌렸다. 지호는 부쩍 고기를 잘 먹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서 김치를 올려 볶음밥을 해줘도 좋아했다. 다 먹고 무거운 팬을 가지고 가서 씻고 기름으로 코팅을 해서 보관해야 하는 과정은 복잡했다. 그래도 맛있는 고기가 입에 들어가면 이 모든 것들이 용서됐다. 지호의 입속으로 고기가 쏙쏙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출렁출렁 좋았다. 서서히 밖이 어두워졌다. 바깥에 있는 의자를 접어 텐트 안쪽으로 넣고 말려놓았던 그릇, 널어놓았던 수건, 식탁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텐트 안이 미어터지게 생겼다. 아무래도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찾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한참을 허둥대다가 지호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지호가 텐트 구석진 곳에 떨어진 내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액정화면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보고 있었다. ‘지혜로운 듬직이’라는 글자 뒤에 하트 세 개가 박혀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받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하고 살펴야 할 것들을 다시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끊었다. 지호는 한쪽 구석에서 버너를 찾아냈다. 젓가락에 소시지를 끼우고는 칼집을 내고 익히기 시작했다. 돌려가며 굽더니 탄 부분도 맛나게 먹는다. “지호!” 내가 이름을 부르며 눈에 힘을 주자 지호는 씩 웃으며 한 개 더 구워서 나에게도 내밀었다. 이번에는 탄 부분 없이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지호는 마시멜로도 굽더니 나에게 먼저 주고 자신의 것을 2개 더 구워먹었다. 당 수치가 살짝 걱정되었지만 이런 날에는 이래도 될 것 같다고 속으로 다독였다. 아침부터 짐을 싣고 떠나와서 그럴까, 긴장 속에서 지낸 꽉찬 하루라서 그럴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유로 급히 잠이 쏟아졌다. 지호에게 “먼저 잘게.” 한마디를 남기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우두두둑.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 있는 지호도 놀라서 깬 듯했다. 번개가 치고 빗줄기가 굵어져서 텐트 천장 위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점점 빗줄기가 사납게 내리치더니 천장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급히 나가려다가 미끄덩 미끌어졌다. 아!
그때 뒤에서 지호가 내 팔을 잡아줬다.
“괜찮아요? 여기 조심해요.”
지호는 평소에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말했다. 이런 상황에 존댓말은 꽤 알맞았다. 내 감정 에너지에 초고속 충전 완료 불빛이 깜박깜박 들어왔다. 지호를 향해 한 번 웃고는 바로 일어났다. 기다란 폴대를 찾아 텐트 천장에 생긴 물웅덩이를 들어 올렸다. 촤아아! 웅덩이는 물 폭포가 되어 텐트 옆으로 떨어졌다. 급히 양쪽 텐트 창문이 열려있는 곳은 없는지, 바닥에 물이 들이닥치는 곳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위쪽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흙탕물이 우리 텐트 쪽으로 넘치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텐트 양옆으로 물고랑을 파야할 것 같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려서 찾아낸 나뭇가지로 한쪽 고랑을 파고 있는데 지호가 나와 반대쪽 고랑을 같이 파기 시작했다. ‘많이 컸네.’ 고랑을 파는 내내 든든함이 올라왔다. 밤새 번개가 번득이고 넘치는 빗물이 우리 텐트를 집어삼키려고 했지만 나와 지호는 거대한 빗줄기로부터 우리 자리를 지켜냈다. 비가 서서히 잠잠해질 무렵 전우애 비슷한 감정과 함께 허기가 올라왔다.
“우리 라면 먹을래?”
그래. 나는 조금만 맛보겠다고 했고 라면은 지호가 끓이기로 했다. 라면에 남은 소시지까지 넣어서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엄마는 꼭 안 먹을 것처럼 하고는 이러더라?”
지호의 불퉁거림에도 오랜만에 맛있게 냄비를 비워냈다. 라면을 먹으면 후식이 땡긴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지호는 자신이 사 왔던 브이콘, 숏다리를 꺼내왔다. 보통의 과자보다 딴딴해서 턱에 무리가 되는 것 같았으나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브이콘은 적당히 짜고 적당히 고소해서 중독성이 있었다. 생각보다 맛있는 지호의 먹거리를 먹으며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틀이 지호에게는 답답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브이콘을 천천히 씹으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호가 갑자기 물었다. 자신이 왜 ‘지혜로운 듬직이’인지 궁금해했다. 생각해보니 지호는 내 핸드폰에 저장된 자신의 별명을 오늘 처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