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은 Jul 23. 2019

한달살기 비엔나를 고른 이유,

머무르면서 여행하기엔 최적지

@ 뮌헨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호프브로하우스. 슈바이네학센에 소시지, 1리터 맥주면 그저 행복하다.

한 달이 긴 시간같지만 그렇지 않다. 금방 지나간다.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유롭게 다니려면 한 달도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한 달쯤 머무르면서 소소한 여행을 할 곳으로 비엔나를 고른 것은 맥주, 와인이 맛있고 음식이 잘 맞는 곳이어서도 있지만 교통의 요충지여서다.


영국에서 석사하면서 서유럽은 저가항공이나 유로스타를 이용해서 주말마다 틈틈이 오갔지만 동유럽은 꽤 거리가 있어서 방학 때 2주간 뮌헨, 잘츠부르크, 크라코프, 자코파네 등지를 여행하면서 트레킹한 게 전부다. 


동유럽을 천천히 여유있게 둘러보고 현지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면 비엔나가 적당한 것 같다. 실제 비엔나에 머무르면서 기차를 타고 독일 베를린과 뮌헨,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다녀와 보니 참 편하고 좋았다.


@ 교통의 요지 비엔나 중앙역. 비엔나는 대중교통이 다른 주변국가에 비해 잘 돼 있고 청결한 편이다. 기차도 대체로 정시출발한다. 밤기차도 타고다닐 만하다. 

베를린은 밤에 침대기차를 타면 아침에 도착하고, 뮌헨은 대략 4시간쯤 걸리고, 부다페스트는 2시간 30분이면 간다. 중앙역에 가면 로마로 가는 밤기차도 있고 밀라노, 베로나 같은 이탈리아 도시들도 연결된다. 크로아티아로 가는 버스도 있고 인접한 국가들을 기차나 버스로 편리하게 오갈 수 있다. 운전 좋아한다면 차를 렌트해서 다니면 시골풍경도 덤으로 볼 수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등등을 취향대로 오가며 여행하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비엔나는 한 달 살기하기 참 적합한 지역이 아닐 수 없다ㅎㅎ 집이 가까우니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기차타고 휙~ 여행 다녀오는 기분이란. 색다르다.


@ 베를린 체크포인트찰리.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의 모습을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번 베를린 여행에선 역사를 좋아하는 나와 미술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을 서로 존중해 아침먹고 헤어져 각자 다니다가 저녁먹기로 약속한 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1,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장소나 역사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 같은 곳을 위주로 봤고 남편은 섬에 있는 박물관을 죄다 둘러봤다고 했다. 나중엔 좋았던 곳을 같이 다시 한번 가보기도 했다. 


내 주변 유럽 친구들 중에 베를린을 좋아하는 도시로 꼽는 경우가 많다.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도시에 들어선 현대적인 건물과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한 달쯤 머물면서 살아볼 만한 매력있는 도시라고 느꼈다. 런던, 파리와는 사뭇 다른 곳이다.


@코르도 바에서 맛본 독일 스타일 파인다이닝. 리즐링, 피노누아와 조화를 이루는 맛깔스러운 음식이었다. 열심히 먹고 마시다보면 셰프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준다. 

식사나 쇼핑은 베를린의 '힙플레이스'라는 몽비쥬파크 뒤편에서 주로 했는데, 편집숍이나 디자이너숍,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나 와인바가 몰려 있다. 젊은 셰프가 아시안 푸드를 접목한 요리를 내놓는 와인바 Cordo Berlin에 갔었는데, 오스트리아 리즐링과 피노누아 한 병씩을 고급진 요리와 함께 즐기기도 했다.


리즐링은 무난했지만 피노누아를 가격대가 있는 걸로 주문했더니 풍미가 너무 좋고 섬세한 맛이 느껴졌다. 한국엔 와본 적 없다는 셰프는 김칫국물을 전체요리에 소스처럼 활용해 상큼한 맛을 내는 창의력을 발휘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혼자 코스요리에 와인을 즐기던 현지인과 대화도 하고 식당을 추천받기도 했다. 


@ 뮌헨 공원에서 급물살에 서핑하는 멋있는 언니. 보다보면 더위가 싹 가신다. 부럽다! 

뮌헨은 말해 뭐해, 독일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다. 독일 현지인에게 물으면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고 뮌헨은 오래 머무르면서 여행다니기 좋은 도시라고 말한다. 가까이에 산도 많고 성도 많고, 바이에른주의 목가적인 풍경을 즐기기에도 좋다. 차 산업이 발달해서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BMW 박물관 같은 곳에서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맥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뮌헨은 천국이다. 오래된 호프브로하우스에서 1리터짜리 맥주 시켜서 슈바이네학센과 먹는 즐거움도 누리고 파울라너하우스에서 진~한 밀맥주도 즐길 수 있다. 


술에 있어서 만큼은 뮌헨엔 갈 곳이 정말 널려있어서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워낙에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곳인데 가는 곳에 따라 아예 손님들끼리 큰 테이블에 합석을 시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리는 분위기가 되는 곳들도 있다. 우리도 독일 지멘스에서 일한다는 현지인과 영국에서 출장 온 부부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건배하고 대화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를 오르는 언덕에서 찍은 사진. 땡볕에 폭염 후덜덜.

부다페스트는 얼마 전 유람선 사고가 있던 곳이기도 해서 가는 기분이 썩 내키진 않았는데, 역시나 고가의 카메라를 분실하는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여행이기도 했다. 도시가 예쁘긴 한데 폭염에 어디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서 세체니 온천에서 수영이나 하자고 갔는데 캐빈에서 귀중품을 잃어버렸다. 잠궈둔 캐빈에서도 분실이 일어나다니 역시 동유럽은 동유럽이다;; 그래도 야외 온천장 체험은 이색적이긴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한 달 살기를 고민 중인 분들이 있다면 부다지구 말고 페스트지구에서도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으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구글맵 기준으로 뉴욕 궁전 카페에서 관광지 표시가 없는 주거지 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조용하면서도 힙한 샵들이 많은 살기 좋아보이는 동네가 꽤 있다. 사실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유럽 어느 도시보다 많은 곳이라 한국에서의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도시를 즐기러 온다면 다른 곳이 좋을지도 모른다. 관광지쪽은 서울인지, 부다페스트인지 가끔 헷갈릴 정도로 한국인이 많다. 


비엔나에서의 하루하루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미술사박물관, 알베르티나 미술관, 레오폴드 미술관, 제체시온 같이 갈 만한 곳이 정말 많다. 입장료가 결코 싸진 않지만 값어치를 하는 곳들이다. 


@ 왕돈까스 못지않은 비엔나 슈니첼. 동네에 10유로 이내에 먹을 수 있는 싸고 맛있는 맛집이 있어서 자주간다.
@ 오스트리아 리즐링에 치즈, 소시지, 삶은계란, 샐러드, 포도로 먹는 가벼운 저녁식사ㅎ 

대로변 번화가 말고 곳곳에 숨어 있는 Passage에 가보면 디저트와 커피, 음식뿐 아니라 빈티지 의류, 악세서리, 골동품, 음반 등을 파는 이색적인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이웃에게 물어보니 요즘 비엔나의 '핫플'은 숲 근처에 있단다ㅎㅎ 숲 가까운 곳에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클럽이 있다는. 20대였다면 당연히 갔겠지만 난 이제 클럽엔 약간 흥미가 떨어진 상태다. 대신 이번주엔 지하동굴을 한번 가봐야지. 


@헝가리 토카이 아수. 오래될수록 황금색에서 갈색으로 색이 점점 짙어지는 게 한 눈에 보인다. 

맛있는 과일과 질좋은 치즈를 사서 헝가리에서 사온 토카이 아수 와인도 마셔야겠다. 노블롯으로 만들어 10년쯤 숙성한 5푸토뇨스 와인을 거금주고 한 병 사왔다. 토카이 아수는 같은 노블롯 와인이라도 수확한 해의 포도가 좋을수록, 숙성기간이 길어서 색이 황금색에서 갈색으로 짙어질수록, 당도 등급인 푸토뇨스가 높을수록, 산미도 함께 높아 밸런스가 좋을수록 값이 비싸다. 


이왕 간다면 마트나 슈퍼에서 파는 너무 가벼운 토카이 아수 말고 와인숍에서 풍미가 좋은 고품질 와인을 사서 마셔보는 걸 권한다. 어떤 와인이 좋은 걸까 잘 모르겠다면, 라벨에 붙어 있는 연도가 오래되고 와인 색이 짙을수록, 푸토뇨스가 높고 값이 비쌀수록 대체로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ㅎ 4-5만원대부터 수십만원까지 가격대는 다양하다. 청포도 같이 적당한 당도를 가진 과일에 치즈와 함께 먹으면 좋다고 한다. 


@ 날씨가 적당히 선선한 날엔 비엔나 외곽 포토밭을 내려다보면서 야외에서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비엔나 살면서 단 하나 아쉬운 건, 이곳이 영어권이 아니라는 점밖에 없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그밖에 다른 언어를 쓰는 동유럽에서 한달살기를 하면 아무래도 영어가 자유자재도 통하진 않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관광지에선 의사소통이 다 되지만, 주거지로 오면 영어가 안 통하는 경우도 적잖다. 생활에 불편하다기보단 현지 문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현지인과 소통하는 데 아무래도 답답한 면이 좀 있다. 


이외엔 사람 사는 건 큰 틀에선 어디나 비슷하고,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른 구석이 많아서 한달살기는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며칠 여행하면서 본 풍경과 전혀 다른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지겨운 내 일상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경험. 한달살기, 추천할 만하다. 



















































작가의 이전글 운동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