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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Jul 25. 2019

엄마를 닮은 딸,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간다 

며칠 전, 엄마가 회갑을 맞으셨다. 

우리 엄마가 벌써 61세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엄마는 여전히 40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 엄마는 아이 셋을 키운 '워킹맘'이다. 

예전엔 육아휴직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슈퍼맘'이지..

어린시절 내 기억 속엔 비오는 날 우산 들고 학교 앞으로 찾아와준 엄마는 없었지만,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정장을 차려입고 나를 학교에 태워다준 후 출근하는 엄마가 있었다.


나는 엄마가 젊어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엄마는 농담으로라도 "이제 그만둬야지" 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남자 동기들에게 밀려 승진에서 누락될 때면 분을 못이겨 엉엉 울고,

상사에게 당차게 따지고, 퉁퉁 부은 얼굴로 다시 일터로 가는 열정 가득한 분이었다.


그런 엄마가 올해 연말이면 정년퇴직을 하신다.

퇴직 후에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시겠다고 퇴근하고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시험도 보신다.

너무 열심히 해서 가끔 당황스러울 정도다. 

나는 욕심 많고, 열정 많은 그런 엄마가 늘 자랑스러웠다.


나는 엄마를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걸 느끼는데, 좋기도 하지만 싫기도 하다.


나는 사실 경쟁하는 것보다 내 안의 어떤 것을 표현하는 데 더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하고 평가받는 직장생활이 적성에 안 맞다고 느낀다.  

그런데 솔직히, 예술가로 살기에 충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에 

"가장 하고 싶은 일"보다는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와중에 어려서부터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하고, 잘 해야 하는 엄마의 딸로 살아온지라

또 인정받지 못하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편이다.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는 건 당연하고, 대회를 나갔는데 수상을 못하면 화를 내곤 하셨다.

적당히 잘하면 칭찬을 받고 싶은데 "더 잘할 수 있겠네" 하시며 채찍질하는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열심히 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인정욕구까지 높아서

일을 해도 스트레스, 안 해도 불안해서 스트레스, 이래저래 즐기지 못하고 일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열정 만땅'이고 행동력이 있는 대신 '욱'하는 성격도 엄마를 닮았다.

나는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은 이것저것 많이 재지 않고 그냥 하는 편이다.

고집이 세고 좋아하는 일에는 의욕이 넘쳐서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아무도 못 말린다.


대신 참을성이 부족해서 화가 나거나 불쾌한 상황을 잘 못 넘어간다.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고 시간이 지나면 이불킥을 하며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우리 남편 말에 따르면, 나는 기분 나쁠 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걸 알면서도 '팩트폭행'을 수시로 날린다. 남한테 싫은 소리 거의 안하는 남편 입장에선 욕설이 없어도 '폭언'에 가까운 수위란다; 


예전에 엄마가 화가 나셔서 혼날 때, "어떻게 저런 말을 딸에게 할 수가 있지" 싶었던 내 기분을 남편이 느끼는 것 같다. 아빠는 혼낼 때도 조곤조곤 이유를 따져가며 회초리를 들고 한참 후에 "아팠냐"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분이었는데 엄마는 무섭게 혼내고도 그런 것 없이 그냥 쿨하게 지나가셨다. 

욱하는 성격까지 엄마를 닮았구나 싶어서 가끔은 후덜덜할 때가 있다.


손이 크고 퍼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엄마를 닮았다.

우리 엄마는 겉보기엔 안 그런데 정이 많아서 베푸는 것을 좋아하신다.

줘야겠다 싶으면 아낌없이 내주는 편이라 작은 것도 아끼는 주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봉사모임 회장님도 맡고,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고, 외할머니한테도 제일 잘하는 딸이다.


나도 좋아하는 주변 사람에겐 아낌없이 주려고 하는 편인 것 같다.

다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고, 그 정과 마음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꽤 오랫동안 지켜보지 않고

먼저 마음을 줘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경우도 적잖다.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도움을 받고 또 남처럼 돌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겪어봐서

나는 차라리 절친하고 오랜 친구들 몇몇 외에는 이런 친구들의 부탁이든, 경조사든, 연락이든,

이젠 정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엄마도 나이가 들고, 나도 나이가 들었다.

나는 이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면서 먼저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 잘못을 지적하고 내가 화났다는 걸 바로 표현하고 싶어도 조금 더 참고 상대를 배려하고 싶다.

늘 열심히, 잘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지 않고 그냥 내가 재미있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나는 내가 다 퍼주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늘 경쟁에서 이기고 잘 나가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랑은 다르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엄마 축하해, 고생했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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