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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다 Nov 02. 2022

내일도 슬플테지만

-최진영의 <돌담>-

장미래도 오명곤도 버스에서 나오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장미 부모를 위로하려고 이러저런 말들을 했다. 그중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섞여 있었다. 그래도 그 집에는 자식이 하나 더 있잖아. 오 씨네는 가장이 죽었어. 자식은 여럿이어도 아버지는 하나 아닌가. 미래는 어려서부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잖아. 명보다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할지도 몰라. 호사다마라고, 부자 삼촌이 과수원이랑 집이랑 넘겨준 게 화근이지. 재산 들어오니 사람 나가잖아. 장미래 건강을 걱정해서 여럿 들어 놓은 보험을 두고도 어떤 사람들은 위로를 가장한 나쁜  말을 주고받았다. 결국 큰 싸움이 났다. 슈퍼 앞 평상에 모여 쑥덕거리던 사람들을 향해 장미 어머니가 돌을 던진 것이다. 사람들이 말렸고, 어머니는 말리는 사람들을 물어뜯었다. 아버지는 도끼를 들고 슈퍼로 달려가 평상을 부수었다. 모이면 입으로 똥만 싸는 인간들! 살아있는 게 뭔 유세라고 죽은 내 딸 목숨까지 저울질이야! 운 좋아 산 작자들! 니들이 죽을 수도 있었잖아! 니들도 죽어! 내 딸도 죽었으니 니들도 다 죽어! 아버지 말에 발끈한 사람이 아버지 멱살을 쥐어뜯었고 아버지는 그를 내팽겨쳤다.

 다음 날부터 장미 부모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과수원도 썩고 마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과수원이 병들자 연못도 말랐다. 정돈된 식물로 아름답던 이층집 주변은 황폐해졌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저 넓은 땅을 언제까지 놀릴 작정이야. 손에 일 놓으면 사람 금방 망가져. 부모가 이러면 안돼. 자식은 무너져도 부모는 무너지면 안돼. 사람들은 장미 부모를 자꾸만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어서 땅을 일구고 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거두라고 했다. 일을 하고 움직여야 슬픔도 옅어진다고, 먹고 움직이고 사람처럼 살라고 어르고 달랬다.

 겨울이 깊어질 무렵 집 밖으로 나온 장미 부모는 수레를 끌고 다니며 돌을 모았다. 담 없이 살던 집에 담이 쌓였다. 돌담이 높고 길어질수록 사람들 마음도 불편해졌다. 오고 가며 이런저런 참견과 걱정을 건네면, 장미 부모는 그 말을 묵묵히 들으며 돌을 쌓았다. (숨쉬는 소설, 최진영의 돌담 p. 41 )


"엄마,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시인데 진짜, 완전!"

"읊어봐봐."

"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 "


"엄마, 또 있어.

---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아.--- 나태주의 묘비명이란 시야. 그러니까 좀 더 버티며 잘 살다가 죽어서 만나자는 뜻이잖아. "


"첫번째 시는 누구 시야?"

"박가람이라고 젠가라는 시"

"엄마에게 너는 내 삶의 일부야. 나무도막 하나가 빠지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젠가 게임처럼 네가 없으면 엄마는 무너져. 그러니까 엄마보다 먼저 사라지지 말아야 돼."

"엄마, 사랑해, 좋은 저녁 보내고 있어."


열여섯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다주고 오는 11월 1일 저녁 여섯시 오십사분. 서울 한복판에서 사라져버린 아이들이 떠올라 목이 뜨겁게 매워져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엄마, 왜 인간은 동물인데 동물이랑 달라?"

"인간은 동물과 같은 종에 속하지만 인간에게는 인간이 느끼는 슬픔, 인간이 느끼는 기쁨 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것이 있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감정과 생각과 언어로 여럿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 사회적 집단을 꾸리는 능력을 발달시켜 왔기 때문이야."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를 읽던 여덟살 아이가 질문을 해오던 11월 1일 저녁 7시 24분즈음 나는 또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을 함께 겪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가 왔다. 엄마가 말하길 앞집 돌담은 그 집 할아버지가 쌓은 건데, 중학교 수학 선생이었던 할아버지는 퇴직한 다음 날부터 강과 산을 돌아다니며 돌을 주워 와 시멘트도 바르지 않고 돌담을 쌓았다고 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한 계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퇴직하고 마음이 허전하니까 담을 쌓은 거라고 했다.

 그럼 그 다음엔?

응?

담을 쌓고 그다음에는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하셨대?

그런 걸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거지.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섞여서 본래 마음에 가까워지는 거지.

본래 마음이 뭔데?

그건.....바다 같은 거지.

바다?

바다에는 고래도 상어도 있고 꽁치도 해파리도 있고 미역도 있고 플랑토큰가 그것도 있는 거 아니냐. 다같이 섞여서....  ---(숨쉬는 소설, 최진영의 돌담 p. 16)


다같이 섞여서 본래 마음이 될 날이 올까? 떨어진 나무토막으로 무너지는 젠가같은 것이 되지는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잘 섞일 수 있을까? 바다처럼? 동물이면서도 동물이 아닌 사람들은 잘 섞이는 방법을 알기는 알까?

그나저나 나야말로 장미래를 잃은 장미의 엄마처럼 돌담을 마음속에 쌓고있는 것은 아닌지...... 은퇴한 수학 선생님의 마음처럼 자꾸만 헛헛해지고 자식을 잃은 장미의 부모를 위로한답시고 '입으로 똥만 싸게" 되는 동네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자꾸만 마음이......이런 마음을 함부로 쏟아내는 것도 죄스러워 그저 읽기만 한다. 읽으면서 버티는 11월이다.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안단테를 듣는 11월2일 아침은이리 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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