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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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제하려는 집단을 만드는 누군가에 대해 증오가 차오를 때는 생각했죠.
그는 결국 병들거나 늙거나 죽을것이다.
그것이 미움보다 더 받아들이기 싫은 시간의 업보가 될 것이다.
자신이, 탐욕에 의한 한계에 다다를 때나 분노에 어쩌지 못할 때도 생각하려 하죠. 나는 어떻게든 사라지거나 아프거나 쇠약해질 것이다.
생을 위한 만트라는 좋은 말들일 수도 있지만
수시로, 죽음을 외우는것이야말로 어떤 경구보다 강하게 우리 내면의 만념들을 불식시키죠.
하지만 메멘토모리. 죽음때문에 인간은, 또
생의 감각에 매몰되죠. 어떤식으로든 사멸의 고통을 잊기위해 본능에 집착하고 유희를 탐닉하고 쾌락으로 전락하고 싶어하죠.
그런 면에서 죽음은 정말 잔인하고 인간은 나약할 수 밖에 없네요. 그럴 땐, 아무 생각없이 그저 빛을 쫓을 수 밖에요. 제세동기를 후려치는 날에도, 호흡기 호스의 소리에 귀가 멍멍해지는 날에도, 몇가닥 남지않은 머리카락을 흔드는 병자의 모습을 본 날에도...
죽음을 가리고 서 있는 환한 빛을 눈이 멀도록 보면서 죽음보다 아직, 내 앞에 서 있는 빛을 먼저, 오래 바라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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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 자려고 누웠는데 꿈결인지, 의식적인 것인지, 도시의 밤거리 불빛들이 반짝이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 창문을 열며 내가 떨어지려는 충동을 보이는 장면에 깜짝놀라 눈을 떴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내가 왜 이런 장면을 떠올린거지?
일요일밤에도 그랬다. 이번엔 창문에 디딤돌역할을 하는 하얀플라스틱 상자를 딛고 서서 아래를 내다보는 장면이었다. 섬망이련가?
소주 한잔 들이켜고 간신히 잠들었는데 여지없이 꿈 속에선 고용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나를 해고하려는 집단의 근로계약 미이행에 억울해하며 소리치는, 잠꼬대를 하다 의식을 되찾아버렸다.
이게 다, 전 직장의 조직적 소외때문일 것이다. 집단에서는 나를 제외시키고 단톡방을 만들어 저들끼리 회식을 했다.
소외와 배제는 공직사회의 잘못된 조직행태이자 파벌문화를 만든 엄연히 청렴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여전히 웃고 피해자인 나는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다. 이걸 다 어째야할지...그 후, 난 새로운 조직에서 새 업무를 맡고 있는데 오늘도 황당한 항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니까 저만 몰랐던 거네요? 다들 전화없었으니 다들 알고 있는데 저만 전화한거니 저만 모른거죠? 네?“
초5 아이가 늘봄 프로그램 일정을 잘못 알아 헤매인 이유는 안내장에 기재된 시작요일을 미처 보지 못한 것임에도, 아이가 전화로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니 그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던 학부모.
월요일 아침에 늘봄프로그램을 취소하겠다고 온 문자는 애교구나. 금요일 저녁 8시에는 늘봄과 방과후 수업, 중복되는데 어찌해야하냐고 전화가 와 10여분 넘게 통화를 했었더랬지.
공문발송 수신자 지정을 잘못해 불려가 가르침을
잘 배우고 온 것은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니.
이런날에도 죽음을 생각해본다.
모두다, 언젠간 유한한 시간의 업보에 사멸할지어니 증오와 분노와 슬픔을 삭힐지고.
현재 내 앞에 펼쳐진 빛줄기를 먼저 바라볼 것.
본능과 유희와 쾌락에도 둔해진 현재의 나는 빛 속을
먼저, 충분히 걸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아프게 하는 인간들을 잊어버리려 노력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