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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는독서 Mar 26. 2024

생각의 길을, 꼭! 찾기를 바라며

라울 니에토 구리디 글그림의 <O(오!)> 나무말미 & <어려워> 창비

 

내 아이들, 내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앞으로 올 모든 아이들을 위해......
행성 B는 없다.
      - 구리디
(<O(오!)>를 시작하며)




 라울 니에토 구리디는 스페인 세비야 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한 뒤 광고와 장식, 건축, 그래픽을 디자인 분야에서 일했으며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어린이 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2014년 구리디가 그린 <고집불통 4번 양>으로 마드리드 서점 연합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고, 2018년 <두 갈래 길>로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쓰고 그린 책은 <어마어마한 거인>, <말>, <어려워>, <두 갈래 길> 등이 있으며 다른 글작가의 작품에 그림을 그린 책은 <고집불통 4번 양>, <새가 되고 싶은 날>, <안돼?>등으로 다수의 작품이 있습니다. 라울 니에토 구리디가 쓰고 그린 그림책은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친절하지 않은 구리디의 그림책을 읽을 때는 독자의 열정적인 추리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림책 <O(오!)>의 주인공은 곰입니다. 그림책의 배경이 되는 계절에 대한 단서는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의 나무와 눈에 푹푹 빠져 찍힌 것 같은 곰의 발자국 정도입니다. "흠. 그렇다면 겨울인가 보군. 곰은 왜 겨울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거지?" 동물 생태학 정보에 의하면 곰은 겨우내 잠만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간혹 날이 따뜻할 때는 잠시 굴 밖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다니는 장면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라는 상식을 벗어난 것 같아 의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겨울을 곰은 돌아다닙니다. 나무 아래에서 나무를 흔들어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사슴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또 얼음 빙판에서 스케이팅을 신나게 즐기다 불안할 정도로 금이 간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눈 위에 누워 천사의 날개를 만들던 곰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곰은 굴속으로 돌아갔을까요? 곰은 다시 겨울잠을 잤을까요?     


"이번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지 않기로 했습니다."     


 글 없는 그림책 <o(오!)>는 겨울잠을 자지 않고 한겨울에 돌아다니는 곰의 모습을 통해 환경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 '행성 B는 없다.'라는 의미를 곰의, 상식을 벗어난 모습을 통해 깨닫게 하는 반전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그림책 <어려워>에는 작은 아이가 등장합니다. 그 아이는 집 밖에 나가는 것부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저 '안녕!'이라는 인사 한마디도, '고맙습니다'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도, 친구의 이름을 부르기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 한 마디를 위해 아이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고 주변인들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라고 누구나 명랑하고 씩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자체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 아이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구리디의 그림책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어떤 사실을 깨닫거나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왜 이야기를 꺼냈는지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구리디의 그림책 <O(오!)>와 <어려워>는 상황만을 독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마치 작가가 그냥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들을 그대로 그리고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리디의 그림책을 보면서 맥락 없음에 갸우뚱거렸나 봅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툭! 꺼내 놓은 것 같은 이야기. 그래서 독자가 열심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도록 합니다. 결코 친절하지는 않지만 읽을수록 생각의 맛이 우러나게 하는 이야기를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는 그리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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