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우리 회사 브랜드의 오프라인 스토어 2호점을 오픈하면서 그 준비에 있어 직원들 모두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의 보호막을 한쪽으로 너무 많이 써버려서였을까.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울면서 전화한 나한테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 지금부터 너는 '엄마를 잃은 엄마의 보호자'라고 말하며 무슨 일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언니 미를 뽐냈던 친언니는 부재중 전화 4 통과 함께 나한테 울며 전화를 했고, 나는 안양에서 출발하여 거의 차 운전대가 다 쥐어뜯어졌을 무렵 서울에 도착했다.
갈비뼈 3개가 부러지고 팔 뼈가 으스러져 깁스를 한 채로 엄마가 나에게 가장 처음 한 말은, 내 손에 있는 상처를 보고 어쩌다 다쳤나는 물음이었다. 짐을 옮기다가 긁혀서 생긴, 고작 대일밴드 하나로 덮어지는 이 작은 상처에 대한 걱정을 당신의 아픔보다 우위에 두셨다.
세상에
고의로 사고를 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집 뒤편에 새로 짓는 주택의 건축 과정에서 인부가 탄 차량이 경사로에서 미끄러지며 생긴 교통사고였다.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사고 영상을 돌려보다 보니 브레이크를 누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D가 아닌 R에 놓고 액셀을 밟았으리라 짐작했다. 사고 현장의 씨씨티비 자료를 경찰서에 제출하기 위해 녹화하면서 오랜만에 육두문자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두 눈을 화면에 고정하고 보는 것조차 힘들었고, 동영상을 돌려봐야 할 때마다 시ㅡ발! 하고 크게 내뱉었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 참아도 참아도 자동으로 욕이 나올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주변에 지나가는 흰 차만 봐도 내 차에 있는 망치를 꺼내고 싶었고, 세상 모든 운전대가 너무도 무서웠다. 예전에 대인기피가 심했을 때 한동안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면 천정이 내려앉고, 벽이 줄어드는 경험을 했었는데. 며칠 간 차에서 그 두려움의 시작을 다시 경험했다.
이성을 찾기 위해 온 몸의 기운을 쏟아냈다. 경찰서와 병원, 보험사를 모두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 까지 들려오는 저 공사장의 트로트 음악소리를 견디며 사고차량 인부가 일하고 있는 현장으로 찾아갔다. 내 집 앞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나다녀야 하는 이 차가 언제까지 이 골목을 들어와야 하는지, 그리고 우선 심한 경사로에 세워둔, 오전에 사고를 내고도 사이드 브레이크 조차 채워지지 않은 저 공사 트럭부터 치워달라는 말을 전했다.
헌데 정말 안타깝게도 현장 소장은 보험 처리하면 끝날 걸, 어린 여자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싸가지 없게 말을 거냐며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2호점 인테리어를 하면서도 그 날 아침에 음료수를 건넨 우리에게 인부들이 '나는 입에 직접 떠먹여 줘야 마시는데' 라는 뭐 같은 말을 들으며 사업하기 더러워서 남자로 다시 태어나던지 해야지 하고 넘겼는데. 야 임마, 이건 생명의 문제잖아. 나는 늘 내가 받을 스트레스 값과 그에 비해 득의 가치가 얼만한지 저울질을 하며 다음 액션을 결정해왔는데, 이렇게 1초 만에 저울질이 끝나는 일은 없었다.
세상에 고의성이 있는 가해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가해자가 부디 죄스러운 마음으로 너무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참을 인을 수도 없이 그리며 찾아왔다고. 그러나 심한 죄책감에 옥죄이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오로지 너라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였고, 네가 보호받아 마땅한 인격체가 맞는지는 내가 결정할 몫이었지.
쫄티를 입고 온 몸의 근육을 펌핑한 채로 번쩍이는 금목걸이와 함께 나한테 위압감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소리 지르는 너와, 나는 더 이상 합의할 이유가 없어졌고 내가 고작 이런 너를 배려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다 피가 났다니 내 인내가 너무 아까워졌다. 엿같지만 이미 사고는 난 거니까 그에 대한 책임은 그래, 네 말대로 보험사가 할 테니까. 내가 잠시 저기 누워있는 사랑하는 엄마의 딸이 아닌, 인간 홍유리가 되어 참아볼 테니. 그저 나에게 공사 일정에 대한 안내, 오늘 하루라도 노래를 끄는 작은 배려, 그리고 차라는 괴물이, 운전자라는 막심한 임무에 대해 마음 깊이 끌어안을 경각심. 나는 그거면 되었었다고.
잘 찾아보면 등짝에서 날개가 나올지도 모를 나의 천사 같은 부모님이, 상대가 넉넉치 못함을 배려하여 차 뒷범퍼도 갈지 말고 MRI도 찍지 말자는 나의 부모님이, 다 괜찮다고 분명 합의해줄 거 뻔히 아니까. 그냥 네가 합의 못하면 어쩌지 라는 마음으로 하루라도 밤잠을 설치라고. 그래서 다시는 운전 미숙, 집중 부족으로 인한 과실 따위 하지 말라고.
구름이
예쁜
하루였다.
차를 10분만 늦게 뺐다면, 아니 그래 누군가 다쳐야 하는 운명이었다면 네가 친 게 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검사실에 들어간 엄마에게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인 시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일이었을 거야'라고 모든 일에 결론 내리는 습관에는 도가 텄는데. 도통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 그런 일이 또 나에게 주어졌다. 아 물론 그래도 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강한 보호자가 될 거야.
다음 날, 현장 소장은 우리 집에 꽃 바구니를 보냈지만 아빠는 그 꽃을 돌려보냈다. 나는 내게 욕하는 소장을 모두 동영상에 담았고, 고소장을 작성했지만 다음날 건물주로부터 소장을 해고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 뭐 다른 현장에 나가서 일하고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100M 거리에서 실루엣만 보여도 피를 끓게 만든 소장은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매일 아침 사고 자리에 서서 그 현장을 보고 30분씩 서 있었고 더 이상 위험한 주차는 생기지 않았다. 현장 직원들도 바퀴가 미끄러질만한 모든 이물질은 시간 단위로 쓸었다.
그래, 나는 그거면 되었다.
어느 현장에 가서라도 지랄 맞았던 내가 문득 떠올라서라도
다시는, 다시는 안일하게 위험하게 일하지 말라고.
이 나쁜 사람들아.
구름이 예쁜 하루였다.
가장 일지 모를 누군가의 밥줄을 끊은 나는
덕분에 다시 술로 잠드는 한 주를 시작했지만
엄마가 내 옆에 앉아 이 구름을 같이 보고 있음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