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생각하는 순간은 의외로 소소한 데서 찾아온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하거나, 드라마 같은 고백을 받는 장면이 아니라, 그냥 일상 속에서 불쑥 스며든다. 나에게 그 순간은, 맛집 앞에서 1시간 넘게 줄을 서면서도 기분 좋게 기다리던 신랑을 봤을 때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걸 왜 먹자고 한 거야”라며 툴툴댔을 텐데, 그는 오히려 “이 정도면 금방이야”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아, 이 사람과 살면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하지만 그 결심이 단번에 굳어진 건 아니었다. 연애 초반에는 잘 맞지 않았다. 서로 좋아하는 음식도 달랐고, 서로의 장난을 장난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작은 오해들이 쌓이면 금세 분위기가 싸해졌고, 그럴 때마다 ‘우리가 맞는 사람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위기를 몇 번 겪고 나니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연애를 하게 되었다.
잘 맞아가는 과정에서도 사소한 것들로 종종 부딪혔다. 30년 넘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든 게 맞아떨어질 리는 없으니까. 나는 대체로 무던한 편이고, 그는 예민한 편이었다. 작은 차이에도 서로의 온도가 달라질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인생에서 뭘 잘 못하면 돌아오는 건 비아냥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왜 이렇게 못하냐.” 달리기를 하던 순간엔 “오늘 저녁까지는 끝나겠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실수하면 당연히 눈치를 보게 됐는데, 신랑은 달랐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탔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 나이에 아직도 제대로 못 타?’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달랐다.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고,
내가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마다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줬다.
그 부드러운 격려가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그의 칭찬은 꾸밈이 없었고, 그래서 더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무던한 연애가 이어지던 어느 날, 예고 없이 파도가 밀려왔다.
우리는 크게 다투었다.
나의 무던함 때문이었을까, 그의 예민함 때문이었을까.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순 없었지만, 나는 그가 서운해하는 포인트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단지 배가 아파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가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그렇게 반응했겠지만, 갑작스러운 ‘시간을 가지자’는 말은 내게 너무 황당했다. 그 순간, 정말로 헤어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흔이 되기 전 결혼을 하고 싶었던 내 꿈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구나 싶었다.
그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 이렇게 나란히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위기라는 건 결국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시험대였던 것 같다.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건, 맛집을 기다려주는 인내나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다정함만이 아니라, 위기를 넘긴 후에도 여전히 서로를 바라본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