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리이자 즐거움이다.
2015년 여름, 비엔나 [강의실에서 휴식]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음악은 즐겁지 않으면 안 된다.
음악은 학문이다.
소리에 대한 끝없는 탐구이다.
우리의 귀는 평생 동안 두 가지를 경험한다. 하나는 익숙함. 다른 하나는 익숙하지 않음. 즉, 새로움이다.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움을 늘 추구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귀에 좋은 자극을 주기 위해서,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늘 새로운 소리들을 탐구하는 것이 즐겁다.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지휘를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만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음악을 즐기는 누구나 음악을 '하는 사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귀는 매일 새로운 것을 접한다. 하루 24시간 중 음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무의식 중에서 접하게 되는 소리부터, 내가 듣고자 하는 소리까지, 우리의 귀는 하루 동안, 평생 동안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클래식 음악 콘서트를 찾은 우리는,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익숙한 음악을 접하게 된다. 늘 들어오던 같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누구에 의한 지휘인지, 공연장의 공간에 따라, 그날의 울림에 따라, 관객석의 반응에 따라 음악은 늘 새롭게 받아들여진다. 오늘 놓친 베토벤 교향곡 5번은 내일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단체에 의해 연주된다 하더라도 같을 수가 없다. 그 재미에 음악회장을 찾는다. 적어도 나는.
나는 작곡가 말러(Gustav Mahler | 오스트리아 작곡가, 지휘자)의 오케스트라 작품을 굉장히 즐겨 듣는다.
그의 교향곡 1번을 처음 실황으로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쉽지 않은 음악이었다. 교향곡 하나가 1시간이 넘어가는 음악이었다. 그의 교향곡들은 전부 1시간이 넘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작곡가 자신이 그만큼 자신의 음악 안에서 할 얘기가 많았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난 말러의 교향곡 1번만 10개가 넘는 음반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연주단체와 지휘자. 누구에 의한 연주인가에 따라 음악의 해석이 달라진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음악의 해석은 항상 두 가지로 나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가 될 수 있겠지만,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즉 악보에 적힌 대로 연주가 되는 경우가 있고, 연주자 혹은 지휘자의 취향(음악적 Taste)에 따라 연주가 된다.
관객의 반응을 위한 연주인가, 작곡자와 나와의 대화를 무대 위에서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음악을 표현하는 자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분석이 먼저 이루어져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연주자들 중에서는 음악분석이 되어있지 않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악기를 다룰 줄 안다면 악보상의 음표를 외우고, 테크닉만 따라준다면 음악 연주는 누구나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지금 연주하는 음악이 어떠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주제 선율은 무엇인지, 왜 여기에 이런 화성이 쓰였는지 이해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과연 연주자 스스로 완벽한 연주라고 할 수 있을까.
본인은 작곡가의 의도를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 음악의 스토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방송에서 사용되는 배경음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분위기상 맞는 음악일 수는 있으나, 작곡가가 그런 의도로 작품을 구상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들이 자주 든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 자주 즐겨보는 방송(드라마, 예능, CF, 기타 등등)에서 들리는 BGM에서 가끔 혼란을 겪기도 한다. 왜 여기에 이 음악을 썼지? 알고 쓰는 건가? 내가 예민한 걸 수도 있겠다.
전공자로서 음악을 한다는 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학문이다. 더 깊이 있는 음악을 연구하기 위한 즐거움, 작곡자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몸부림, 작곡자의 의도대로 연주를 했는데 관객의 평이 다를 때, 이 밖에도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학문이 아닐까 싶다. 그 스트레스 또한 즐거울 수 있다.
비전공자로써 음악을 한다는 것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학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듣다 보면, 내가 원하는 음악 해석이 아닐 때 나타나는 실망감, 중요한 부분에서 연주자의 실수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들릴 때, 공연장에서 감동을 깨는 누군가의 잡음.
환한 불빛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다 보면 어두운 곳에서 그 잔상이 남는 현상을 경험하곤 한다. 나에게는 음악이 그렇다. 하루 종일 같은 음악을 무한대로 반복적으로 틀어놓고 듣는다. 자주 그렇게 한다. 음악을 꺼도 그 음악적 잔상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걸 즐긴다. 일종의 음악적 환상, 몽롱함을 즐긴다. 때로는 지나가는 차의 경적소리를 듣거나 옆집의 못질에 의한 리듬을 듣다 보면 예전에 들었었던 음악이 떠올라 찾아 듣게 된다.
임의의 소리를 통해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재미.
특정 음을 통해서 예전에 들었던 음악을 읊어보는 즐거움.
귀를 통한 소리에 대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나의 머릿속을 헤매면서 그 음악을 찾아내는 재미.
음악을 통해서 특정한 장소가(경험에 의한) 눈앞에 환영처럼 보이는 신기함.
어느 순간 나의 공간 안에는 음악에 영향을 받은 나의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미각적 음색들로 가득하다.
그 기분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