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고요함 속의 움직임

음 | tone에 대한 연구 - 첫 번째

by Gigantes Yang

음악적 고요함 속의 움직임


Wien.jpg 비엔나에 있는 미술관 앞 [Albertina 미술관 앞의 작은 공원]


움직이지 않음 속의 움직임
- 작곡가 윤이상


고전과 낭만시대, 그리고 현대음악을 포함한 서양음악에서 표현되는 음악적 소리는 굉장히 추상적인 음색을 띄고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작곡가에 의해서 악보 위에 나열되어 있는 음악은 첫마디의 주제를 시작으로 음들의 다양한 연속적 움직임들로 가득해지고, 그 값진 여정이 마지막 마디에 이르러 음악적 역할로써의 의미를 하게 된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잔향이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악보 위에서는 무수히 많은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리듬 | rhythm과 음 | tone 만이 음악적 움직임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음과 음 사이의 쉼표, 심지어 오랫동안 지속되는 하나의 긴 음가 | 音價, sound duration 안에서도 움직임은 존재한다.


아름다운 선율 | melody,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화성 | harmony. 이 두 개의 세계는 서로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완벽한 하나의 음악적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여기에 하나의 요소가 더 필요하다.

바로 고요함 | silence이다. 움직임이 없는 고요함.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어딘가에는 음악이 조용히 머무르는 장소가 반드시 존재한다. 악보 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악보 곳곳의 영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선율과 화성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안식과 감동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 순간의 고요함 혹은 음악의 최고조를 단번에 폭발시키기 바로 직전의 바로 그 순간. 바로 그때에 우리의 귀에 전해지는 전율과도 같은 공간적 소름 | goosebumps을 겪게 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움직이지 않음 속에서의 그 무언가의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음악을 듣는 동안에 흘러나오는 선율과 화성의 변화는 어느새 익숙해지다 보면 귀로 단번에 인식이 가능한 음악적 움직임의 세계이다. 이 움직임의 세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영역이 반드시 함께 공존해 있어야 한다. 때로는 건물을 지탱해 주는 뼈대처럼, 때로는 하나의 완전체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처럼.


피아노 건반 위 임의의 음 하나를 눌렀을 때, 예를 들어 '솔'음이 눌려있는 동안에 그 음은 영원히 울리지 않는다. 연주자에 의해 강하게 울려도, 약하게 울려도 결국에는 사라진다. 손을 떼지 않고 그 음을 계속해서 누르고 있어도 어느 순간 그 음은 더 이상 울리지 않게 된다. 하지만 방금 친 '솔'음이 사라질 때까지 과연 '솔'의 소리를 유지하다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 무수히 많은 음들을 구성하게 된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구조를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연주자가 건반을 치는 순간 피아노 안의 현 위에 위치한 망치가 현을 치게 됨으로써 그 현의 진동에 의한 소리를 우리가 듣게 된다.


다른 예로, 양손에 고무줄 양끝을 잡은 채로 가운데를 퉁기게 되면 현 위에서는 순간적으로 큰 진동이 일어나다가 점차적으로 그 진동수가 줄어들어서 원 상태로 돌아온다. 그 원리를 생각해 보면 피아노 건반에서의 '솔'음이 사라질 때까지의 음색적 변화가 이해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을 배음 | overtone의 원리로 이해될 수 있겠다.


하나의 음악작품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움직이지 않음 속의 움직임의 매력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움직이지 않음 속에서의 무수히 많은 움직임의 세계를 늘 찾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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