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움직임 속의 움직임

음 | tone에 대한 연구 - 두 번째

by Gigantes Yang

음악적 움직임 속의 움직임


Beethoven&Schubert.JPG 비엔나의 슈베르트 공원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함께 처음 안장되었던 장소. 지금은 중앙 공동묘지에 위치해 있다.]
공기의 떨림은 인간의 영혼에게 이야기를 하는 하나님의 숨결. 음악은 신의 언어.
음악가들은 인간들 중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입술을 읽고,
하나님의 자식들을 태어나게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 그게 음악가다.

- 영화 『카핑 베토벤』의 대사 中...



악보 위에 기록된 음악이 시작된 이후로 유럽 음악에서 표현되는 음악을 구성하는 모든 음 | tone은 추상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음 | tone 자체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음악을 구성하는 음 하나하나에 음악적 우주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여정이 악보 위에 기록되어 있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음악이 끝난 시점에도 우리의 주변에 맴돌고 있는 여운까지, 모든 음악적 요소들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음악의 3요소에는 리듬 | rhythm, 멜로디 | melody, 화성 | harmony이 있다. 이 3가지의 요소만 가지고도 악보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음악적 움직임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우리의 귀로 그 움직임의 안내를 받다 보면 어느새 음악과 하나가 되고, 한 작품의 종착지에 다다르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음악이라면 몰라도, 처음 듣는 난해한 음악이라면 금방 길을 헤매게 되고, 음악이 끝나는 그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악 안에서 길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귀로 들리는 음악적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겨우겨우 뒤쫓아 가다 보면 생길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음악적 움직임 | movement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음악적 움직임 | movement은 음악 안에서 많은 흔적들을 남기게 된다. 그 흔적들은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다. 반드시 음악이 쓰인 원인이 있고, 그 음악 안에서 어디선가 결과는 존재한다.


음악적 움직임 속의 움직임 | movements in movements

음악적 흔적의 의미와 이유, 그리고 음악의 원인과 결과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그 공간.


첫 번째 주제 선율 | melody(혹은 제1주제 | thema 1)이 나오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선율은 화성 | harmony의 힘을 받아서 더욱더 발전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처음 들었던 주제 선율이 똑같이 존재하지 않아도 다음의 두 번째 주제가 나오기 전 까지는 그 공간 안에 이미 녹아들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두 번째 주제에서는 그 첫 번째 세계가 없어졌을까? 그렇지 않다. 두 번째 주제(제2주제 | thema 2)가 나올 때에는 이미 처음 세계가 만들어 놓은 음악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첫 번째 주제와 두 번째 주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 전혀 다른 음색과 분위기를 가져도 상관없다. 두 번째 주제가 나오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을 첫 번째 주제가 흘러나오던 공간에서 찾아보면 반드시 그 움직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악보를 눈으로 직접 확인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가 되겠다. 그렇다면 음악을 귀로만 접했을 때에는 어떨까. 앞에서 설명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전공자의 입장에서 쉽게 풀어놓은 이야기가 되겠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음악을 접할 때, 가령 클래식, 현대음악, k-pop, 국악, 세계 음악 등, 악보를 눈으로 읽으면서 감상하지는 않는다. 정말 드물다. 흔하게는 귀로 접한다.


필자가 여기에서 정리하고자 하는 음악적 움직임 속의 움직임에는 개개인의 음악적 상상력 | imagination이 필요하겠다. 음악을 즐기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단순하게 음악이 나에게 와 닿으면 그만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의 특정 작품을 임의의 100명이 귀로만 감상한다고 했을 때, 최소 100가지의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같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하더라도, 어느 부분에, 어느 순간에, 어느 정도의 감동인지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선율을 접하고서 실제로 '아름답다'라고 표현한다고 해도 감상문 위에 적은 필력 혹은 획력[劃力]에는 의미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소리를 질러본 적이 있는가. 나의 입술에서 소리가 떠나는 순간 모든 벽, 바닥, 심지어 사물로부터 돌아오는 파장, 일종의 메아리 | echo를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소리의 형상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공연장에서 연주돼 음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현과 활의 마찰에 의한 소리, 피아노의 망치와 현의 부딪힘에 의한 소리, 호흡에 의해 관(목관악기, 금관악기)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소리, 타악기의 울림. 이 모든 소리들이 공연장을 타고서 무한한 음색의 향현을 펼치게 된다. 무대 위에서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연장 전체가 아주 훌륭한 공명판이자 음색 파장의 증폭기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폰이나 집에서의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보다 공연장에서의 음악이 더 생기 있고 귀가 즐거운 것이라도 본다. 실제로 명(名)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악기에 의해 울리는 무대와 공연장의 잔향에 굉장히 예민하다.


클래식 혹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악보에 기록된 음악을 위해서 작곡하지 않는다. 작곡가에 의해 설계된 음의 집합체로 인하여 어떠한 세계가 펼쳐지게 될지 기대하기 때문에 사전작업을 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작업이 완성이 되면 악보로 나오는 것이다.


악보와 실제 연주되는 음악세계 넘어서의 음악적 공간을 상상하고 체험하고자 음악적 움직임 속의 움직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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