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노래
즐겨 듣던 인디(?) 뮤지션이 있었다. ('인디'라는 말을 붙이기엔 너무 어색한, 홍대의 SM쯤으로 불리는 기획사에 소속된 뮤지션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그 뮤지션이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의 숫자도 상당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많은 뮤지션이 그러하듯, 그 사람의 것도 비슷한 감성과 색깔의 곡이 대부분이었고 그 시절엔 그런 감성의 곡들이 유행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을 튕기면 톡 하고 터져버리는 물방울 같은, 아직은 가까스로 참아놓은 감성을 응축한 노래들. 그 뮤지션의 것은 일 년 전의 앨범과 일 년 후의 앨범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둘을 하나의 앨범으로 묶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자기 색깔이 분명했지만, 누군가는 자기 복제의 결과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한 시절 나의 음악 취향과 감성을 지배했던 것 같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어쩐지 버스를 타고 싶어 졌다. 가물거리는 버스 번호를 기억해 한때는 자주 들렀지만, 더 이상 가지 않게 된 동네로 가고 싶은 작은 충동이 일었다.
그곳에서 내가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 곳엔 없다고 생각하는, 혹은 있는 데도 없을 거라 생각하는 그런 것들. 그 시절 나의 마음이 머물던 사람이었거나, 그때의 기억이었거나, 그 모든 날들 속의 나였을 수도 있다.
그 음악들은 한낮의 봄처럼 설레었다. 이별 뒤의 모습까지 따뜻해, 애써 돌아서는 연인들처럼 서글프기도 했다. 저물어가는 하루의 끝자락보다 눈 부시게 빛나는 아침에 더 어울렸고, 하루가 지나도 담담해지지 않는 첫사랑의 이별처럼 내내 마음속에 파도가 일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나의 시선은 햇빛이 부서지는 한강 위에 머물거나, 집으로 향하는 어둑한 골목길을 걷는 그림자로 향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를 향해 머뭇머뭇 망설였고, 반복해 듣던 노래들은 그 마음을 여러 번 매만져주곤 했다.
무언가 그리워질 때면,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싶을 때면 난, 그의 음악 언저리에 머물렀다. 특정할 만한 무언가를 그리워하진 않았지만, 지금을 살다가도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날엔 그 시절의 그리움으로 마음을 옮겼다. 어쩌면 가장 반짝이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졌던 어린 날들을 향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그 뮤지션과 함께 하게 됐다. 사람들은 그의 본명을 불렀다. 그의 이름은 유리잔에 담긴 물처럼 투명했지만 어쩐지 세련된 느낌이었다. 노래 가사에 비해 자신의 감정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별 앞에 머뭇거리고, 마음속 동화를 꺼내놓듯 사랑했던 날들을 기억하는 노랫말을 쓰는 사람이라기엔 살얼음이 덮인 물처럼 상대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차가움이 있었다.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한 곳에서 깊이 속삭이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선 자신을 보일 여력이 남지 않은 거라고, 이미 다른 곳에서 최선을 다해 그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니 더는 들출 것이 없을 거라고. 그 뮤지션은 곧 떠날 거라고 했다. 런던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사람은 떠났고 그곳에서 또 한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내가 듣던 음악은 그가 떠나기 전의 것들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는 꽤 오랫동안 듣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악들이 그렇듯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한 때 즐겨 들었다는 사실도 잊었고,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의 나는 더 많이 잊었다. 지금의 삶에선 없었던 기억처럼 사라졌다.
그러다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에서 원래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배경음악이 들려왔다. 드라마와는 완벽한 조화였다. 누구인진 모르지만, 익숙했다. 오랜만이었다. 그 사이 시간은 너무 많이 흘렀고, 한여름의 폭우처럼 모든 것을 쓸어갔고, 그 자리엔 전혀 다른 삶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같은 감성을 노래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변치 않고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괜히 애틋하고 뭉클해졌다. 조금 더 정돈되고, 조금 더 성숙해졌다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첫사랑을 시작하거나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노래하는, 첫사랑의 정서를 담아내는 한결같음이 반가웠다. 그야말로 첫사랑이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기분. 제법 나이를 먹었는데도 언제나 첫사랑의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그 뮤지션이 존재함에 나의 시계도 몇 번이나 태엽을 감았다.
어쩌다 발견한 과거의 기억에 지금의 당신이 겹쳐졌다. 내겐 늘 첫사랑인 당신. 당신과의 오늘, 여전한 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