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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Jan 22. 2024

잃어버린 건 스웨터뿐일까?

겨우 스웨터 하나

  그것은 꽈배기 모양의 줄무늬가 들어간 연한 아이보리색 스웨터였다. 부드러운 소재가 닿는 따뜻한 착용감도 좋고 무엇보다도 깔끔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자주 입고 다녔다. 청바지에도 어울리고 면바지에도 잘 어울려서 올 겨울은 이것만 있으면 다른 옷들은 필요 없을 만큼 자주 입었다. 애지중지 입기야 했지만 모든 옷이 그런 것처럼 너무 자주 입었더니 옷을 보고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가 묻지도 않았는데 후줄근해 보이고, 깔끔하거나 깨끗한 느낌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새 옷일 때보다 구저분해졌을 수도 있지만 옷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마음이 싫증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면 깨끗해질까? 생각해 보니 자주 입었는데 한 번도 세탁을 하지 않았다. 깨끗하게 해 줄 테니 그러면 예전의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스웨터로 돌아와 줄 것이다. 섬유 유연제와 함께, 그리고 기대감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탈수까지 끝나자마자 바로 꺼내어 잘 건조했다. 잘 말린 스웨터를 다시 입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세탁하는 동안 스웨터가 너무 줄어서 입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온다. 생각해 보니까 스웨터가 그렇게 후줄근하지도 않았다. 입다 보니 더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도 있었고, 아껴서 입었기 때문에 사실 별로 더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주 입어서 더 예쁘고 잘 어울리는 코디법도 많이 익혔었다. 옷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덕이었고, 마음의 변덕으로 인해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변덕으로 잃은 게 스웨터뿐만은 아니다. 오래 지내다 보니 익숙해진 나머지 갑자기 흥미를 잃기도 하고, 처음처럼 대하지 않다가 떠나가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스웨터는 입을 수 없게 되었지만 스웨터 대신 입게 된 지각(知覺)은 다시는 벗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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