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붕어빵 노점은 겨울과 함께 등장한다. 하얀 밀가루 반죽을 거푸집에 부은 다음 팥 앙금을 올리고 3분이 지나면, 모락모락 김과 함께 노란 붕어빵이 나타난다. 외출을 마친 엄마가 흰 봉투 안에 담아 온 붕어빵은 봉투에 눌어붙어 있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붕어빵은 엄마가 들고 왔던 눌어붙은 그때 그 붕어빵이다. 식탁 위에 놓인 흰 봉투를 찢고 안에 있던 노란 붕어빵을 허겁지겁 먹다 보면 어느새 빈 봉투만 남는다.
붕어빵에는 한겨울 다양한 대화 소재도 담겨 있다. 예전에는 “너는 붕어빵 먹을 때 머리부터 먹어? 꼬리부터 먹어?”라는 질문이 유행이었다면 요즘에는 붕어빵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팥붕’과 ‘슈붕’의 선호도를 묻는 질문이 대세다. 네 마리에 천 원 하거나, 잘 찾아보면 천 원으로 다섯 마리나 살 수 있었던 붕어빵은 이제 세 마리에 2천 원이나 하지만 겨울을 지배하는 붕어빵의 인기는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지만 붕어 모양이기 때문에 붕어빵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냥 밀가루와 팥이었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인데도 허위나 사기라고 하지 않는다. 함유량은 중요하지 않다. 붕어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붕어빵이 맞는 것이다. 이것이 붕어빵의 본질이다. 최근 뉴스에서 ‘버터맥주’가 논란이 되었다. 상품명은 버터맥주이지만 버터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함유량이 중요할까? 붕어빵에도 붕어가 없는 마당에? 붕어빵과 버터맥주에는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붕어빵은 붕어와 형상이 유사하다 점이다. 그에 반해, 버터맥주는 버터의 어떠한 모양도 갖추고 있지 않다. 버터와 버터맥주는 어떤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두 번째가 핵심인데 붕어빵은 소비자를 기만할 의도가 없었지만 버터맥주는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것이다. 어떤 소비자도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버터맥주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버터를, 최소한 버터 맛이라도 기대하고 구매한다는 것이다. 판매자는 아무런 유사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맥주를 버터맥주라고 속여서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다. 심지어 편의점에서 너무 익숙한 ‘바나나 우유’도 제품을 자세히 보면 ‘바나나맛 우유’라고 쓰여있다.
어떤 대상이 들어있지 않아도 이름을 빌려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기만의 의도가 없어야 하고, 형상이라도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 십원빵에는 십 원짜리 동전이 들어있지 않고, 직지빵에도 직지심체요절이 들어있지 않고, 오리배에도 오리가 들어있지 않지만 두 조건을 만족해서 이름을 빌려오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른 존재의 이름을 빌려오려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만 버터맥주는 그러지않았다. 만약 버터의 색과 모양의 맥주잔이라도 써서 버터맥주라고 팔았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이름을 빌려왔다면 그건 훔쳐온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