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야기

그녀가 만났던 독일 선생님들

by YJ

어느덧 예삐는 6학년이 되었다.

독일의 중,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 진학하기 위해 나름 성적관리를 해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예삐가 속해있는 현 초등학교 6학년부터 김나지움 입학 지원 조건이 강화된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김나지움 추천서(Förderprognose)를 받아야 함은 물론, 성적이 간당간당한 학생은 김나지움에 입학하더라도 1년 유예(Probe Unterricht) 기간을 거쳐야 한단다.

안타깝게도 예삐는 공부에 그리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K-pop 아이돌에 빠져 틈만 나면 흔들어 대고, 앨범을 모으는 데 모든 걸 집중하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다.

예삐가 한국에 살았던 시간은 불과 120여 일 밖에 안 되지만 11년을 꼬박 독일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에게 자석처럼 끌리는 듯한 모습을 볼 때면 짠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예삐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걸 느꼈던 것 같다.

하루는 키타(유치원) 선생님 M이 우리를 불렀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나와 남편은 다소 긴장했다.

독일어가 안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당시 삶 자체가 꾀죄죄한 가난한 유학생 모습 그 자체여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잔뜩 움츠러들 때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리가 독일에 왜 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당시에 이해했고, 느꼈던 선생님의 말투는 이러했다.


" 예삐 있잖아... 아침에 엄마랑 떨어질 때 엄청 울지? 그때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얘 엄마 가면 금방 울음 그치고 잘 놀아. 엄청난 연기자(Schauspielerin)라니까. "

" 열이 38도 이상 나는 거 아니면 절대 키타 빠지지 마. 나는 내 일을 할 테니까, 너네는 너네 일을 하도록 해.

그리고 집에서는 절대 독일어 하지 마. 모국어를 잘 기억하는 것도 중요해. 그리고... 음.. 너네 발음이 좋지 않으니까 키타에서 제대로 된 발음을 배우는 게 중요해. 그게 내가 할 일이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난 내 일을 할 테니, 너네는 너네 일을 해."라고 힘주어 말하던 M선생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날 믿어도 된다는 확신에 찬 그 단단한 눈빛을.

자신의 일 - 예삐를 돌보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끝없이 독일어로 얘기해 주는 -을 열심히 한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아이를 믿고 맡기며, 쭈구리 같았던 그 시절을 잘 견딜 수 있었다.


이사로 인해 아쉽지만 M 선생님과는 이별을 해야 했다.

두 번째 키타로 옮긴 지 3개월쯤 지났을까. 하루는 예삐가 집에 와서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 나 독일어가 너무 힘들어."

그때 나이 만 4세. 독일어가 힘들다며 펑펑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나도 같이 엉엉 울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 M선생님은 집에서 독일어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게 문제였던 걸까? 싶어서 새로운 키타 선생님 A를 찾아가 예삐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할머니 A 선생님은 이런 솔루션을 제시해 줬다.


"집에 친구를 초대해. 대신 딱 한 명만. 그래야 둘이 노니까. 그럼 말이 늘 거야."


팍팍하게 사느라, 외로움에 한인들과 어울리느라 예삐한테 독일 친구가 없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이후 예삐가 초대하고 싶어 하는 키타 친구 엄마에게 용기 내어 얘기하고, 집에 애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놀렸다.

초대를 받았다면 그다음은 그 집에서 예삐를 초대했고, 초대하고, 초대받고 가 계속 핑퐁처럼 이어졌다.

키타를 졸업할 때쯤엔 6 공주가 결성되었고, 예삐가 그 친구들에게 한국어 인사를 가르쳐줘서 키타에서 집에 갈 때면 아이들이 "좔 가~" 하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였다.

6 공주를 볼 때마다 할머니 A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이 참 고마웠다.


초등학교에서도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만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H와 그녀의 특이한 상황, 그리고 5학년 때까지 매년 담임이 바뀌었던 독일에서 정말 흔치 않은 일과 1학년 때 담임 H의 평가가 몇 년 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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