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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하 Jan 22. 2024

4년 사이 성장 궤도를 달린 N.

사는 게 지쳐서 독일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마지막 장소,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첫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해준 뜻깊은 장소다. 일하는 나를 처음 마주한 공간이다. 아직 이곳에는 독일에서 살아가는 지인들이 남아 있다. 독일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벌써 10년째 이곳에서 터전을 꾸려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인턴을 했을 때 의지했던 분이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게 회사의 장비를 사용하는 방법 부터 문서를 작성하는 스킬까지 가르쳐주셨어서 기억에 남는 분이다. 직속 사수도 아니었고, 다른 업무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잘 가르쳐주셨다. 고마운 분이라는 마음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을 종종 주고 받았었다. 그래서 이번에 독일에 가기 전, 프랑크푸르트에 잠깐 머물다 가는데 시간이 맞다면 한 번 만나자고 연락을 드렸었고, 감사하게도 꼭 얼굴을 보자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금요일 저녁,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만났다. 프랑크푸르터의 시간으로는 한 주의 마지막인 금요일 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거리는 쇼핑하러, 데이트하러, 만남을 가지러 나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라면 프랑크푸르트는 먹거리 천국이다. 베트남,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아시아의 식문화가 프랑크푸르트 곳곳을 지배했다. 한국은 7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분들 덕분에 프랑크푸르트에 한인사회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90년대 대기업들이 유럽의 경제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 지사를 내면서 한국에서 온 주재원, 언론인들이 서서히 프랑쿠프르트에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독일인들은 프랑크푸르트에 꼭 들러서 한식을 먹고 간다고 한다. 열흘 행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기 때문에 서서히 매운 음식이 땡겼던 터라 김치찌개를 먹을까, 마라탕을 먹을까 고민하다 마라탕 집에 갔다. 


마라탕 집 안에 미리 도착해 있던 그녀를 만났고, 우리는 4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한 채로 반갑게 서로를 맞이했다. 2019년에 인턴은 마무리한 후, 20년에 코로나가 터지고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이니 4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오래된 친구인 우리는 시간을 넘어 반갑게 근황 업데이트를 했다.


지난 4년 간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 당시에도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더 멋있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이 시간 동안 그녀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이커머스가 한참 떠오르던 2020년 즈음, 그녀는 이커머스 마케팅이 회사 차원에서 중요한 액션일 거라 제안을 했고 이커머스 마케팅에 대해 하나도 몰랐지만 독학으로 공부하여 직무를 잘 수행했고, 회사에서는 그녀의 노력과 열정을 좋게 보아 그녀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주었다. 지금 그녀는 한 팀의 팀장이 되어 멋지게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녀를 보자면 성실함, 묵묵함이 떠오른다. 일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일본 전산 이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살아남는 자는 강한 종이 아니고 우수한 종도 아니다. 변화한 종만이 살아남는다.” 그녀가 한 얘기와 맞닿아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전공을 졸업했지만, 이 일이 좋아서 뛰어들었고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노라고. 강하거나 힘이 센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우수하다는 것도 사실 주관적인 개념일 뿐이고, 우수함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강함과 우수함은 천차만별이다. 탁월함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투자하고 흔들리지 않는가에서 비롯된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묵묵하게 삶을 일구어 낸 그녀는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멋지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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