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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하 Jan 23. 2024

에필로그-지속가능한 행복 메커니즘

사는 게 지쳐서 독일 여행을 떠났다.


여행 동안 읽은 책이 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얇고 가볍길래 이동하는 중간에 읽으면 되겠다 싶어 챙겨갔다. 특히 2023년 동안 어떤 것이 행복한 상태인가에 대해 한해도록 고민했기에 답을 얻고 싶었다.


2023년 한 해 동안 성 나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첫장면을 보면 주인공인 대니와 에이미는 평화로운 교외의 거주지 한복판에서 분노의 질주를 한다. 운전하는 방법이 서로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 둘은 잡아먹을 듯 서로의 꽁무니를 쫓는다. 주인공들처럼 나도 뭐 하나 걸리면 터질 것 같은 복어마냥 가시가 돋힌 상태로 변해갔고, 가족들도 스트레스가 많아 보인다며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버거운 마음들을 내려놓고자 자전거를 타면서 한강을 달리고, 러닝 머신 위에 올라 있는 힘껏 뛰었다.


정신과 의사인 꾸뻬씨는 왜 사람들이 우울해할까,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을까 하는 질문에서 행복론을 정립하기 위한 여행을 떠났고, 꾸뻬씨는 총 18개의 지론을 정립한다. 그중 인상 깊었던 대목은 두 가지다.

배움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배움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 행복해요?”라고 물어보면, 성취 혹은 쓸모있음에 나의 유용함을 느끼고 행복을 경험했는데, 이런 행복 패턴이 독이 되었던 것 같았다. 매순간 성취할 수 없는데, 성취감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 어렸구나. 실패하거나 특별히 예쁘게 꾸미지 않은 나의 일상적인 모습도 그냥 받아들일 걸.


또 이번 여행에서는 배움 17이 특히나 와닿았다. 이번 글을 독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주로 구성한 것도 그 이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고 기뻤다. 이제 우리가 철부지 학생들이 아니라 적어도 어디선가 1인분은 해내고 있구나, 내가 자고 있을 때 그들은 일어나서 일터에 가고, 그들이 일터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회사에 가고, 우리는 각자의 루틴에 충실하게 살아갔구나.


구체적으로,   

E는 고양이 하울을 입양하며 2인 가족이 되었고, 집은 고양이를 배려하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캣타워가 입성하고, 집엔 고양이 장난감이 여기저기 있다.

I와 K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끼리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에서 살다가, 각자의 남자친구와 삶을 꾸리기 위해 각자 이사 나갔다. K가 먼저 결혼할 것 같다.

B는 타지에서 왔지만 베를린에 정착하려고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최근에 들은 뉴스인데 그는 드디어 집다운 집을 찾았다며 랜선 룸투어도 시켜줬다. 그가 거쳐간 공간들 중 가장 최상의 컨디션인 집으로 보여 마음이 놓였다.

N은 새로운 업무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그녀의 성실에 주어진 훈장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이 지속가능한 상태이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일단 내가 이제껏 가져왔던 습관은 버려야 함은 지당한 사실이다. 성장과 성취 속에서만 행복을 느낀다라, 이것은 숨막히는 습관이다. 성취도 중요하지만 규칙적인 루틴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 안정감이 주는 만족감. 이젠 이것을 추구할 시기가 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한 가지, 나를 에워싼 사람들의 행복. 성취, 만족감, 타인의 행복이 적절히 버무려질 때 균형 있는 행복 상태로 도달한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레슨이다.


옛사람들이나 행복 별 거 없다, 안정감이 행복을 준다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옛말 중 틀린 말 하나 없다더니. 세상 어디서나, 그리고 세상 그 누구나 얘기하는 행복론이지만, 특별한 계기 없이는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활자일 뿐이었다. 직접 경험하니 이해가 배가 되는 행복론. 다시 한 번,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


첫 브런치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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