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지쳐서 독일 여행을 떠났다.
올 한해는 일터에서 많이 울고 웃었다.
하나의 목표로 팀을 이끌어보라고 파트장으로서 새로운 직책을 맡기도 했으나, 회사의 결정으로 팀이 해체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겪었다. 성과가 보이면 일시적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성과가 낮게 나왔을 때 자책의 감정이 들기도 했다. 감정 고저를 많이 겪었다. 또한 같은 업무를 2년 간 해오다 보니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숙해져서 권태로움도 스멀스멀 다가왔었다. 매달 반복되는 기획과 운영에 익숙해져 이 무한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5월의 어느날, 긴 고민 끝에 입사하고 2년만에 장기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10월에 오랜 기간 마음에 남아 있었던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교환학생으로 베를린에 다녀온 지 어언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순수했던 시기였기 때문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주인공인 “나”는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 사랑했던 소녀를 만나기 위해 상상의 도시로 떠난다. 오직 첫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형체도 이름도 없는 도시로 망설임 없이 떠나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마음 한 켠 남아있는 아련한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마 소녀를 사랑했던 그 모습이 베를린을 사랑하는 내 모습과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4년 전 베를린에서 마주했던 나는 처음 가족으로부터 떨어졌고, 모든 선택을 오직 내 자유의지에만 기대어 내릴 수 있었다. 꾸밈없는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가지각색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베를린에서 나날이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매일 배우면서 안전지대의 경계선을 확장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진전되지 않았던 시간에 속도가 붙어 훨훨 날 수 있도록 기대를 하며 베를린으로 떠났다.
10월 3일 오전 9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공항 수속을 빨리 밟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 게이트에 앉아 이번 여행의 마니페스토를 작성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변화한 나를 맞이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고, 귀국 후에도 이번 여행의 가치를 잃지 않고 오래 지속하고 싶어 조금의 과장을 더해 “마니페스토”라고 명명해보았다.
부끄럽지만 마니페스토에 적힌 것처럼 매일 글을 쓰진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고 왔고, 그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힌트를 얻고 왔다. 이번 여행 동안 사람들로부터 배웠던 삶의 태도를 하나씩 에세이로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