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미각] Ep.1 음식에 상당히 진심인 편

이토록 사소한 기쁨

by 자청비

나는 음식에 있어서 꽤 보수적인 편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도전적인 사람이다.

평소에는 늘 먹던 음식, 익숙한 맛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 지역에서 꼭 먹어야 하는 특산물이라면?

누가 뭐라 하기 전에 먼저 가서 먹어본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맛에 대한 호기심은 참을 수가 없다.


한 번 꽂히면 오래 가는 편이다.

한 가지 음식에 빠지면 한 달은 기본,

길게는 반년 가까이 그것만 먹는다.

내 입맛은 말하자면 좀 집요한 편이다.


특히 배가 심하게 고플 때는

보수적인 입맛이 튀어나온다.

새로운 메뉴보다는, 예측 가능한 맛을 선택한다.

배고플 땐 모험보다 안정이다.

그때 신중하게 골랐는데 맛이 없으면?

솔직히 좀 짜증나니까...


처음 중국에 갔을 땐 정말 힘들었다.

1년 동안 중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서

거의 투정에 가까운 일상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먼저 중국 음식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 뭐가 맛있다더라 하면 꼭 찾아가서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 적응했구나.’


중국에 살 때 한 번은 몽골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기억나는 건 오직 두 가지: 자연과 음식.

몽골 음식은 느끼하고 기름진 편이었는데,

다들 못 먹겠다 할 때 나는 혼자 신나게 배부르게 먹었다.


어릴 적부터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었다.

중국 향신료?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그 향이 익숙하다 못해,

향만 맡아도 뭐가 들어갔는지 대충 맞춘다.

덕분에 세계 음식에도 제법 적응력이 생겼다.

(물론 먹어본 나라가 그렇게 많진 않지만…ㅋㅋ)

남편도 내 입맛 따라 같이 향신료를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집엔 늘 향신료 몇 가지가 구비되어 있다.



신혼여행으로 태국에 갔을 때도,

4박 5일 동안 한식은 단 1도 생각 안 했다.

오직 태국 로컬 음식만 먹었고,

중간에 배탈도 났지만 끝까지 고집했다.

그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호주에서 살던 시절, 태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팟타이를 질리도록 먹었다.

놀랍게도, 아직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간절히 생각난다.


터키 음식도 마찬가지. 여행보다 음식이 더 기억난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 가기 전에 명소부터 찾는다지만,

나는 항상 맛집부터 찾는다.


남편과 나는 입맛이 꽤 다르지만,

한 가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는 스타일은 닮았다.

그래서 다행이다.

코로나 직전엔 훠궈에 빠져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으러 다녔다.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말이다.


결혼하고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땐 정말 맛 없었다.

그런데도 묵묵히 먹어주던 남편에게, 지금도 고맙다.


결혼 12년 차.

이젠 레시피만 보면 웬만한 음식은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도전도 잘 한다. 실패도 자주 한다.

실패하면 두세 번 해보다가 그냥 사 먹는다.


얼마 전에도 도전했다.

집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 동파육을 만들어봤다.

결과는… 그냥 간장조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성공은 아니었지만, 맛있는 실패였다.


음식 앞에서는 늘 진심이다.

익숙함을 좋아하면서도, 새로운 것에도 열려 있고,

기꺼이 도전하고, 때론 실패하고, 그래도 다시 시도한다.


맛있는 건 놓치기 싫다.

왜냐면, 그건 그냥 한 끼가 아니라,

내 삶의 추억이 되니까.





[중화미각 - 김민호, 이민숙, 송진영 외, 책을 읽고 제 삶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