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읽고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수정 守静은 고요히 앉아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힘이고,
존양 存養은 마음을 쏟아 자신을 기르는 힘이라 한다.
꿈꾸었던 미래를 가슴에 품고 있는가
— p.16 [나를 지켜낸다는 것]
4년 전, 여름이 시작되던 즈음 나는 ‘번역’에 빠졌다.
‘그 나이에 무슨 도전이냐’, ‘그걸로 돈은 벌 수 있겠냐’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내 삶’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달렸다.
일도 병행하며, 잠을 줄여가며 번역 공부에 매달렸고,
아이들은 거의 방치하듯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번역가’라는 꿈은 예고 없이 갑자기 내 안에 들어왔다.
내가 오래도록 꿈꿔온 미래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꿈을 품고 있었기에
‘번역가’는 나에게 알맞은 직업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 p.34 [나를 지켜낸다는 것]
1년이 지나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마음은 허전했다.
간절했던 걸 이루고 나서도 허탈함이 밀려왔다.
처음부터 잘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던 때, 나도 그 흐름에 올라탔다.
새벽을 깨워 하루를 시작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그렇게 일찍 일어나도 하루는 늘 부족했다.
나만의 속도를 가늠하지 못한 채
세상의 속도에 휘둘려 살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한가로움 속에서 사람들의 바쁨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나는 이것이 세상의 시류에 따르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서도
마음 한 조각을 빼내어
더 높은 위치에 올라 우리의 인생을 조망하면
외부 세상 때문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뭇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도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며 타인의 행위를 분명하게 관찰하고 타인의 동기를 분석할 수 있으면 말로만 떠드는 언론에 좌우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요함 속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한가함 속에서 사람들의 바쁨을 보는 것입니다.
- p35 [나를 지켜낸다는 것]
나는 늘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지금도 여유롭지 않게 살고 있지만
4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여유롭지 않았다.
이 여유는 물질이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 당시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할 것 같았고
더 빠르게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다.
“늦게 시작했으니 더 빨리 달려야 해.”
그 생각이 나를 조급함에 몰아넣었다.
결국 모든 걸 놓아버렸다.
새벽 기상도, 스터디도, 노력도.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이자 보호자이고
집안일도 해내야 하는 주부이며
일도 해야 하는 자영업자이고,
공부도 잘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 모든 역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하며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공부 외의 다른 걸 하면
내 시간을 빼앗기는 기분으로 살았다.
“우리가 생활 속 1분, 1초를 즐겁게 누려야 하는 이유는 인생이 본래 무수한 일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p.50 [나를 지켜낸다는 것]
4년 전엔 이 문장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1분, 1초가 쌓여 현재가 된다는 것을.
어차피 늦었고,
어차피 완벽할 수 없다면,
왜 그렇게 조급해했을까.
세상엔 완벽한 글쓰기도
완벽한 번역도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때 글쓰기의 힘을 처음 알았다.
속 시끄러울 땐 글을 쓰는 게 가장 고요해질 수 있음을.
쓰다 보면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쉴 수 없게 만드는지 알게 된다.
번역 공부를 하면서 시작한 책 읽기와 글쓰기가
나를 조급함에서 인내함으로 서서히 바꿔주었다.
지금 나는 번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쓰기는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 - 팡차오후이, 책을 읽고 제 삶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