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공감의 무게

[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by 자청비
선으로써 다른 사람을 승복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능히 승복시킨 사람은 없고,
선으로써 다른 사람을 기른 연후에라야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승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以善服人者,未有能服人者也,以善養人,然後能服天下.] -<맹자><이루> p63 [나를 지켜낸다는 것]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과연 공감의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힘들어진다.

특히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오래 들어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괜찮다.

같은 양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니 크게 지치지 않는다.

그런데 한쪽 말만 계속 듣는 상황이나

난 듣기만 하고, 상대는 쏟아내기만 할 때,

그 피로감은 오래도록 몸에 남는다.


어느 날 친구들과 2~3시간 만났을 뿐인데,

집에 돌아와 완전히 녹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오늘따라 피곤하네’ 하고 넘겼지만,

며칠 뒤 온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났는데 그때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에너지를 같은 양으로 주고받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공감’이 ‘대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것만 해도

내 에너지가 바닥나버린다는 사실을.


특히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험담을

몇 시간이고 들어야 할 때는

정말이지 최악의 대화이다.


공감하려고 애써보았지만

나에겐 무리였고,

결국 묵묵히 들어주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은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기절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꺼내보려 하면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너도 그러잖아.”

“넌 안 그런 줄 알아?”

“너도 똑같아~”


원래도 대화를 어려워하고,

인간관계가 서툴렀던 나는 이를 계기로

관계의 문을 더 닫았던 것 같다.

그게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


나는 왜 그렇게 ‘관계’가 힘들었을까.

관계가 힘드니 대화도 자연스럽게 힘들어진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웠던 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였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단둘이 있어도 충분히 즐거웠고,

아이들과 있을 땐 외롭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이 많이 어릴 때는 잠깐 외로움도 느끼긴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변화한 걸까?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지만,

나는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시도하고,

함께하려 애쓰며, 기꺼이 공감하려 한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면 시간을 내주고,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대화를 끝내고 나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상대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냥 입을 다물 걸’ 하며 후회하곤 했지만,

지금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아직도 두렵고, 아직도 어렵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조금은 달라진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 공감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