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인생수업-류쉬안]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모든 만남이 즐겁고도 감사하다. 모든 비극은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이다. 모든 결함은 인간의 사랑으로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다. 모든 만남은 스쳐 지나가는 것일지라도 인연이다.
집을 나서는 매 순간이 이별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매 순간이 만남이다. p31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남편과 자주 싸우지는 않지만, 한 번 싸우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다.
미움을 내뱉다가도 금세 ’ 사랑한다 ‘고 말하는 나쁜 여자를 자처하며 살아왔다.
나이를 먹었나 보다.
3년 전, 처음으로 남편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던 날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바로 침대에 누운 그의 모습.
평소 같았으면 등짝을 때리며 “왜 이러고 있어! 먹고 바로 누우면 건강 나빠진다고!” 하고 잔소리를 했을 나였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화가 치밀던 순간, 문득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게가 눈에 들어왔다.
찬양을 틀어놓고 눈을 감은 남편의 뒷모습.
그 옆에 조용히 누웠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그의 어깨가 그렇게 무거워 보인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이 기분은 학창 시절 중국에서의 기억을 불러왔다.
엄마는 한국에 계셨고, 나와 동생은 아빠에게 의지하며 지내야 했다.
어느 날 밤, 혼자 자는 게 무서워 아빠 옆에 누웠는데,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아빠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난 보고 말았다. 흐르는 눈물을.
한 팔로 얼굴을 가린 아빠의 옆모습, 그리고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그 순간, 어린 마음에도 모든 게 전해졌다.
나는 갑자기 아빠와 자기 싫어졌다며,
황급히 방으로 달려와 밤새 숨죽여 울었다.
내게 할머니는 바위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쉼을 주셨다.
그런 할머니가 둘째 임신 6개월쯤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출산 뒤 깊은 우울증을 겪었다.
그 감정은 미움으로 변해, 아들을 돌이 될 때까지 미워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끈끈한 모자(母子)가 되었지만, 그때는 아이도 나도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다.
어느덧 할머니가 떠난 지 9년.
3년 전에서야 나는 그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할머니에 관한 글을 쓰며 울고 또 울고, 그렇게 추억 속에 묻어 두었다.
아빠는 지금 손주들에게 푹 빠져 지내신다.
나는 아이들의 재능을 일찍 발견해 그 길을 열어주려 노력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지 않아 늘 아쉽다.
그래도 크게 불만은 없다.
그런데 아빠가 아이들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속으로는 ‘좋았어!’ 하고 외쳤다.
아빠는 매일 같은 시간 술을 드신다.
그리고 꼭 그 시간에 전화를 하신다.
어느 날은 부쩍 힘이 없어 보이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빠 어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먹고살기 바빠서 재능을 봐줄 여유가 없었어.
뭐만 하면 혼나고 맞았지. 만약 그때 내 재능을 알아봐 주셨다면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
“…”
“그러니까 애들 재능 낭비하게 두지 마.
아빠가 술 한 번 안 마시면 그 돈 보태줄 수 있어. 애들 마음껏 배우게 해 줘.”
처음으로 들은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아빠도 꿈 많던 소년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하늘에는 언제나 구름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린 하늘이다.
이 구름을 받아들이고 호흡과 고정 대상에 집중한 뒤 생각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기다리자.
감정 기복이 실은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점차 나의 감정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p36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아마 첫째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아이를 재우는 데, 첫째가 말했다.
“엄마, 하늘이가 내가 햇님이랑 결혼한다고 놀려서 기분이 나빴어요.”
나는 ‘기분 나빴겠다’라고 공감해 주며, 아이를 재웠다.
다음 날 등굣길, 문득 책 속 문장이 떠올라 아이에게 말했다.
“유리야, 하늘 봐봐. 구름이 많지? 구름이 어때? “
“구름이 빠르게 움직여요!”
“구름은 계속 움직이지? 이것처럼 우리 감정도 시시때때로 바뀐다?”
“네?”
“하늘은 그대로인데 바람 때문에 구름이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흘러가는 거야.
네가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다고 하루 종일 기분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어?”
“아니요!”
“그렇게 우리의 감정은 지나가는 거야. 네가 어제 말한 그 아이가 또 놀리면 너는 선택할 수 있어.
‘놀리든지 말든지~’ 생각하며 흘려보내며 ‘패스!’하는 거지~ 아니면 ‘아, 기분 나빠.’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그럼 저는 패스! 해야겠어요!”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네!”
나도 내 설명이 부족하고 어렵다고 느꼈다.
아이가 완전히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웃으며 ‘패스’라고 답한 순간 안심이 되었다.
아이가 나처럼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하다.
삶의 목적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마음과 힘을 전부 기울이고 난 후에도 멋진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자리에 앉았느냐는 사실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공연을 감상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삶이란 멋진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서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져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p57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우리는 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린다.
우리 엄마만 봐도 그렇다.
내가 어릴 적부터 엄마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지금도 늘 바쁘시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실 틈도, 나와 함께 할 시간도 없으시다.
그래서 나는 늘 정서적 결핍 속에 자랐다.
엄마는 아파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아플 때만큼은 푹 쉬시길 바라지만, 그 바람은 늘 바람일 뿐이다.
엄마는 일 걱정에 전전긍긍하시며 다시 몸을 일으킨다.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엄마의 모습이 내 마음을 울린다.
엄마도 나처럼 하고 싶은 게 있고, 쉬고 싶을 텐데.
언젠가 한 번 지나가는 말로 툭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엄마가 여행 다니며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아.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잖아. “
이 말이 엄마에게는 마음속에 쿡 박혀 한동안 뇌리에서 떨쳐지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바쁘지만 엄마를 위해서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신다.
등산을 하거나,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거나, 엄마만의 여행을 즐기신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이토록 평범하게 살기란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