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보통의 날에 새로운 시각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by 자청비


마음가짐이란 삶의 형태가 변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p127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오기 전, 친정엄마와 남편과 함께 열 군데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때 내가 제일 싫어했던 집이 바로 지금의 집이었다.


그런데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친정 부모님이 이 집을 계약해 버렸다.

남편이 부모님과 함께 일하는 회사가 집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생각해 도와주신 거였지만,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반강제로 제일 싫어했던 집에 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임신 3개월 차였고, 첫째는 8개월이었다.

집 안에서 창밖을 보면 맞은편 건물의 벽이 보이는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이사 직후 겨울이 닥쳐와 더 답답했다.


외출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검색하던 중, 기적처럼 동네에 문화센터가 막 생겼다는 걸 알았다.

이곳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낯설었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유모차를 끌고 열심히 다녔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그 문화센터는 내게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 동네는 아이 키우기엔 쉽지 않다는 것을.

울퉁불퉁한 길,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들, 언덕길…. 늘 긴장하며 아이를 지켜야 했다.

병원도, 마트도, 편의점조차 가까운 곳에 없었다. 주변에 집을 제외하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임신으로 몸은 무거워져 첫째가 넘어지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잡아주지 못했던 순간은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새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이 도시의 리듬에 나의 마음을 자유롭게 내맡겨 보자. p129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좋을 수가 없던 집이었다.

복층이었지만 테라스도 없고, 맞은편 건물 때문에 커튼조차 마음껏 걷지 못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고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뒷산을 오르고 도토리와 밤을 주웠다.

그제야 처음으로 자연을 관찰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지만, 어린이집 차량에 의존하던 일상은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로 모든 차량 운행이 멈추자, 나와 아이들은 매일 걸었다.

애벌레, 무당벌레, 매미, 잠자리, 벌, 사과나무, 대추나무, 벚나무, 논밭과 밭에서 자라는 온갖 채소들까지.

없는 게 없는 동네였다.


늘 싫어하고 떠나고 싶던 곳이었는데, 걷고 또 걷다 보니 동네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3년을 걸으면서 나는 어느새 이곳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복층은 늘 짐으로 가득했지만, 남편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치우기 시작했고, 그곳은 가족 모두의 공간으로 변했다.

게임을 하던 우리,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 빨래를 널던 자리까지.

버려진 공간이 우리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이웃들도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물며 익숙해졌다.

불편함도, 피해도 없는 조용한 관계.

이웃주민 아주머니는 둘째를 특히 좋아해 주셨고, “뱃속에 있던 애가 벌써 저렇게 컸네”라며 함께 기뻐해 주셨다.


나의 시선을 달리하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원망스러웠던 동네가 이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스며든 동네가 되었다.